읽는 동안 즐거웠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한동안 신경숙 작가의 글을 읽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에 거부감을 느끼는 감정장치가 고장이 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그녀만의 문장으로 가득한 작품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세상에 작가는 많다며 그녀를 등지려고 마음먹었던 내가, 그녀의 신간 소식에 호기심을 넘어 반가움에 가까운 색깔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연 설명을 최대한 줄이고 최대한 빠른 전개를 추구하는 요즘 세상에 익숙해진 탓인지, 초반에는 작품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다. '굳이 이런 사소한것까지 설명을 하다니?'와 같이 멋도 모르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알았다. 그렇게 느린 속도로 탄탄하게 쌓아나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지를. 작가는 아버지의 시간과 공간, 그 속에 남은 아버지의 흔적들까지 꼼꼼하게 그려냈다. 덕분에 소설 속 '아버지'의 세상을 정말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와는 두 세대 정도 차이가 나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임에도 말이다.

이 책에 그려진 '아버지'는 나에게 판타지에 가깝다. 나의 아버지가 나쁜 아버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작품 속 '아버지'가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아버지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 둔 화자가 부러운 이유가 뭘까 고민해봤다. 작가가 대신 전해주는 그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너무 흠뻑 빠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가.

잠들기 전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클고, 노란색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마음에 새겨져 여러번 따라 쓴 문장들도 많았다. 작가의 예전 글이나 새로운 글보다, 이 책을 한번 더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