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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목차가 흥미롭다.
첫 번째 탄생, 두 번째 탄생, 세 번째 탄생.
어떻게 한 사람이 세 번의 탄생을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던 생물학적인 탄생을 그 첫 번째로 꼽고, 프랑스로의 망명과 그곳에서 프랑스어를 익히고 동화되어 프랑스인처럼 생활했던 시기를 그 두 번째로 꼽으며, 다시 자신의 언어인 페르시아어를 되찾고, 이란을 처음 방문했던 경험을 세 번째 탄생으로 꼽는다.
현대 사회에서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이 태어난 고국을 떠나 여러 가지 이유- 그것이 유학이든, 이민이든-로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 또한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유학과 일을 하느라 외국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고국으로 돌아가 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나의 언어와 문화를 포기하라고 억압하거나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거나, 고국을 떠나오는 것을 막는 일은 없었다.
나의 베프 중 한 명은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이란에서 프랑스로 망명 후 캐나다로 이민을 온 부모를 둔 이란인이다. 집에서는 그들의 언어인 Farsi 만으로만 대화해야 하고, 어릴 때부터 이란 전통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기왕이면 결혼도 이란인과 하기를 바랐지만 아직까지 싱글인 그녀를 볼 때마다
알라신을 찾는 그녀의 부모님 눈에 그녀는 알라신마저도 버린 자식이다. 이란 혁명을 겪어내고 고국을 힘들게 등지고 다른 나라를 택한 것은 모두 자식을 위한 일이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하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그녀는 험난한 삶의 대가치고는 크게 만족할만한 선물이 아니라고, 알라여!! 하고 외쳐대시니 말이다!
난독증이 있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책을 조금이나마 쉽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게 업인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를 따라다니던 페르시아어 망령을 보면서
가끔 나를 따라다니는 국어의 망령을 떠올렸다. 내가 쓰는 맞춤법이 제대로인지, 내가 쓰는 언어가 유행에 뒤처진 예전의 언어는 아닌지 늘 신경 쓰이고, 요즘 잘 나간다는 가수 한 명 제대로 알지 못하고, 유행어나 인기 있는 연예인 한 명 제대로 모르지만, 늘 내 언어를 잊지 않기 위해 한국어 책을 읽고, 카페에서 한국어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자신의 언어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책 속 소녀의 모습이 보여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그녀가 처한 상황이 나와는 천지 차이지만.
그녀에게 안전한 삶, 더 나은 삶은 주기 위해 소녀의 부모가 선택했던 가난한 이민자로서의 삶이 안타까워서 때때로 코끝이 찡해졌고, 어린 소녀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도 무시하다가 결국 소녀가 교실에서 실수하게 하는 교사의 태도에 울분을 터뜨리게 했고, 그럼에도 잘 커서 이제는 어엿하게 자신의 터를 만들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도우며 선생님이라는 자리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 시작이 5세 소녀이든 20세 처녀이든...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언제고 내려지는 뿌리는 점점 깊이 그 자리에서 깊이 내리고 굵어져 나무가 흔들리지 않고 크게 자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5세 소녀였던 마리암 마지디에게도, 30대의 여인이 된 마리암 마지디에게도, 그리고 20대의 유학생이었던 나에게도, 40대의 직장인이고 이민자인 나에게도, 그리고 지금 어디에선가 망명자로, 유학생으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을 당신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