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것에 관한 서술 - 중세 수도사의 인도 여행기 문명텍스트 45
요르다누스 카탈라 드 세베락 지음, 박용진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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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여행에 대한 환상이 있다. 낯선 곳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문화, 이국적인 자연 등은 인간에게 놀라움과 설렘, 흥분을 가져다준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휴가철에 떠날 여행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현대인에게 여행지란 어쩌면 유토피아와 같은 곳일지 모른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동방은 유토피아와 같은 모습으로 상상되곤 했다. 그들은 동방에 '에덴의 동쪽'에 해당하는 낙원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지상 최고의 군주인 사제왕 요한이 통치하는 사제 요한 왕국이 있다고 확신했다. 중세인들은 언젠가 그곳에 도달하리라는 꿈을 가졌고, 이러한 그릇된 꿈과 확신이 유럽인들을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이끌었다. 그러나 실제로 동방에 방문한 유럽인들은 그곳에 낙원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책과 조상들의 입을 통해 습득한 동방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통념이었지 실제 동방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행에서 접한 동방의 모습을 여행기에 소개하면서도 기존 관념을 그럴 듯하게 섞어 들려주었다. 중세의 동방 여행기는 이처럼 직접 보고 들은 것과 당대 사람들이 믿던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은 '팩션(faction, fact + fi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동방을 방문한 유럽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이들이 새로운 여행기를 집필하면서 동방 여행기의 성격은 점차 바뀌어갔다. 낙원이 없는 동방은 더이상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여행기는 점차 기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과학적 관점에서 서술되기 시작했다. 동방의 진짜 모습을 담은 이러한 여행기는 당대 유럽인들에게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후 새로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요르다누스의 <신기한 것에 관한 서술>은 그러한 여행기 중 하나이다. 요르다누스는 인도를 중심으로 동방의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고,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물론 그 역시 당대의 통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기존의 동방에 대한 전설과 상상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본 것과 기존의 관념을 엄밀하게 분리하여 서술했기 때문에 실제와 상상의 세계가 혼재하던 이전의 여행기와는 다르다. 이러한 점이 요르다누스의 여행기가 가지는 의의이다. 총 80p 정도에 인도의 음식, 꽃, 동물, 자연현상, 종교, 풍속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사실 여행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도에 관한 지리서에 가깝다. 야자나무, 코코넛, 코끼리, 화장 풍습, 이교도의 문화 등 신기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읽다 보면 유럽인에 비친 아시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어 유익하다. 또한 제3인도에 자신이 여행 중 경험하지 못한 기존의 유럽인들의 통념에 대해 몰아서 적어넣은 것이 흥미롭다. 기존의 편견과 실제 관찰한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 절충안으로 자신이 직접 가본 곳에 대해서는 대체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직접 가보지 못한 제3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할 때는 전설과 상상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서술한 것이다. 요르다누스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그가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피부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 여행기가 완벽하게 과학적인 태도로 작성된 글도 아니고, 이전의 중세 여행기처럼 상상력으로 점철된 픽션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요르다누스의 여행은 한편으로는 전승의 확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었다. 이처럼 중세의 동방 여행기의 이행기적 글을 읽으며 상상과 현실의 괴리, 그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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