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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왕원화 지음, 문현선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에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가끔 만나면서 서로 호감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밍홍과 저우치,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DVD 대여점을 운영하기로 마음 먹은 즈핑과 그레이스, 나이 차이로 인한 갈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팡과 안안 등이 그들이다.
낯선 도시의 낯선 지명에다가 사람 이름도 낯설지만, 그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들이다. 처음엔 멀게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한국 사회에서의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장인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 낯선 이름들도 어느새 친숙하게 다가온다.
각 장은 특별한 타이틀 없이 번호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 장의 말미와 다음 장의 초반은 교묘하게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공기는 맑았다.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었지만 저우치는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유일한 느낌은 그와 린밍홍 사이에 어떤 결과도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 느낌은 두팡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었다. 저우치와는 다르게 그는 그런 까닭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각 장마다 다른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하나의 장이 끝나고 다른 장이 시작할 때마다 사물, 사고, 느낌 등 다양한 연결고리가 등장한다. 단조로움을 피하고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한 구성상의 장치로 생각되는데 신선하게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힘들게 한 번 사랑하고 나면 다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기운을 낼 수 없는 걸까?”
나는 밍홍이었다. 틈만 나면 밍홍처럼 위의 문장과 같은 독백을 내뱉는다. 아직 책읽기를 끝내지 않아 밍홍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힘들고 어려운 사랑이 지나간 이후 그에게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며 망설일 뿐이다. 그러다가 스쳐 지나간 남자 혹은 여자로 서로에게 각인될 뿐이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피식 웃기도 하고 인상을 쓰기도 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정리할 수 없었던 감정 상태를 작가의 글에 투영시켜 위안을 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한 번 밖에 연애를 못해. 뒤에 오는 연인은 모두 복사본이지.”
“난 다른 사람의 복사본이고 싶지 않아요.”
“그도 알아. 그래서 당신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말도 잘 통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저우치)를 만났으면서도 좀처럼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밍홍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다. 내가 소설과 똑 같은 상황을 맞닥뜨렸더라도 밍홍과 같은 처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2/3 정도를 읽은 지금, 나는 밍홍이 해피 엔딩을 맞기를 바라고 있다. 밍홍과 저우치가 연인 사이로 발전해 행복한 커플이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밍홍에게 바라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최면을 걸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