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레이 수나
김희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친구가 내게 물었다.

" 읽어보니 어때? 어떤 느낌이야?

난 이렇게 대답했다.

" 고요했다. 그리고 소설 속에 그리움과 현 세태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라고

 

이 여덟 편의 단편에는 방황하는 사람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부레이 수나' 의 청년과 '말 걸기' 의 소녀는 먹먹한 현실 속에 그나마 한줄기 희망의 끈을

찾아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출구' 에서의 아버지는 결국 출구로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세 소설에서는 현시대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과.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인생의 출구로 나가려 발버둥 치는 아버지.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아부레이 수나'의 청년이 낯선 이국 땅에서 심적 여유로움과 삶의 무게 마져도 잊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그리고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삼촌의 시대와 현시대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에서 씁쓸함이 배어 났다.

 

이런 안쓰러움은 '분꽃' 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분례여사가 간식 먹는 손녀에게 " 천천히 먹으렴. 마귀할멈이라도 쫓아오니? "

"아니 학원차가 쫓아와."

의 대화에서 청년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조차도 여유로움이 사라지고 있음을,

세상이 변해 지금 아이들은 뀌어놀기는커녕 빙판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지금의 시대를 아무 감정 없이 보여주고 있다.

 

<신도시에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무언지 모를 불안이 스멀스멀 어둠과 함께 스며드는 듯했다. 호젓한 공간을

찾아오는 어둠 무렵의 낯선 객. 어디서 탁, 탁, 벽치는 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랐다. >

 

<어느새 세월도 삶에 시간도 바람처럼 저만치 가고 있었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남은 생의 시간은 또 어디쯤 가고 있을까? 문득 바라보니 분꽃 피는 시간에 분례 여사는 서 있었다.>

 

분례 여사가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을 느낄 때쯤.

 

'자부동' 에서는 아예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회상에 대한 아련함을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불행 속에서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감추고 늘 의연하던 모습의 순아 언니.>

<흰색과 파란색이 반사돼 빚어내는 맑고 부드러운 옥빛으로 빛나고 있는 순아 언니.>

<새신랑의 그 말간 옥색 두루마기를 쭈뼛쭈뼛 따라가는 수줍고 여린 순아 언니의 다홍치마.>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새신랑과 순아 언니의 고은 모습.> <- 이건 오타가 아닐까 싶다.

 

언니를 회상하며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을

노년의 길목에서 자신의 자부동감을 사러 간다는 여인의 얼굴 위로 순아 언니의

모습이 이상하게 그날 선자의 뇌리에서 떠오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위로받으며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슬픔도 혼자 느낄 때는 태산 같지만 누군가 같이 슬퍼해주고 함께 나눠 가질 때,

그 슬픔은 삶의 작은 위안이 돼 남은 길을 가게 하지 않을까.

마치 큰 슬픔이 작은 슬픔까지 어루만지듯......>

 

 

소설 속의 공간이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소설이 있다.

바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 서글픔, 그리고 그리움이 잘 나타나있는

'아름다운 집' 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이 마음에 와닿았다.

 

불면의 밤이 어어지던 어느 날 아침, 고종사촌의 문자메시지가 와있다.

속히 내려와야 할 일이 생겼다는 고종사촌의 말.

고향으로 와서 느끼는 감정.

 

<화사한 봄볕만 봐도 따뜻한 바람만 불어도 늘

생각나는 이곳은 얼마나 아늑하고 다정했던 우주였던가. 나는 평생 단 한시도 놓지 못하고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런 고향이 이제 새로이 들어서는 정부 청사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설탕처럼 달고 소금처럼 짜고 고추처럼 매웠을 지난 시절들이 사금파리처럼

박혀 있는 곳이 아닌다. 내 목숨이 살아 있는 한 그 기억들은 생의 강을 떠다니며

나와 함께 할 소중한 나의 추억들이었다.>

 

이곳에서 나를 반겨주는 구기의 새끼들. 나는 젊은 시절 떠났지만, 구기만은

대를 이어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런 고향이 이제 사라지고 있다. 새로이 들어서는 정부청사로 인해서.

 

<그리운 그곳이 어느 사이 하얗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얗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얗게.... 왠지 이 문구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아련함.아련함.

 

이번엔 다른 소설들과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 하나 있다.

 

'Vanish , 그 쓸쓸함'

쿠랑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고려, 조선시대의 고귀함을 노래한다.

세계 최초의 활자판 직지.

이를 둘러싼 경한 스님과 쿠랑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순간으로 들어간다.

이 소설 역시 -직지- 의 고귀함과 쿠랑의 주홍글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라짐과 영원에 대한 고찰을 주고 있다.

 

<사라지는 것에는 언제나 기억이 살아 있음을.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는 것은 없다,

오직 영원히 조재할 뿐. 후손들이여, 그대들은 사라진 유물들의 애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긴 고통을 듣고 있지 않는가. 사라진 모든 것들은 흥덕사 금당처럼 부활을 기다리고 있음

을 꼭 명심해주게.-직지- 역시 부활 그리고 귀환의 꿈을 꾸고 있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사라져 소멸돼 잊혀가는 환상지통과 같은 그 절절한 쓸쓸함에 대하여...... . >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 일까요, 그것은 아마 서러운 것은 사라져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을 때가 아닐까요? 제일 슬프고 서러운 것은 사라져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을 때

그 쓸쓸함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형벌 같습니다.>

 

 

단편소설이라 그런지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진 않다. 이해 하기 쉬운 복선, 반복되는 상황, 이런 것. 찾기 힘들다.

오히려 함축된 문장이 많을 뿐이다. 그리고 낯선 단어들로 인해 생경함을 느끼며 읽었다.

그러나 읽다가 소위 말하는 밖으로 툭툭 튀어나가진 않는다. 소설 자체가 일상의 이야기들이어서 충분히 공감력을 가지고 있다.

자칫 지루할 뻔한 소재가 오히려 읽음에는 오히려 득이 되지 않았나 한다.

읽는 내내 요즘 읽는 소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라는걸 느꼈다.

역시 작가는 우리 세대가 아니었다. ^^;;

이 소설은 읽는 내내 한 호흡씩 한 호흡씩 천천히 읽어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일까?

옥화를 찾아서는 중간에 덮었다. 이 단편은 나중으로 미뤄야 겠다. 내겐 책을 덮을 권리 또한 있으니까 말이다.

 

소설의 아쉬운 것을 집자면 이야기 속의 도구들이 어설프게 조화를 이루지 못함을 느끼었다.

예를 들어. 분례여사의 스마트폰 문자 소리 표현이나 경한 스님과 쿠랑과의 대화에서 미디어 천국에 대한 대화의

그것들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도구들이 뭔가 매끄럽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나...암튼.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 자체가 너무 딱딱했다. ㅜㅜ

그런데,

왠지 이 작가의 장편소설이 읽어 보고 싶어졌다. 여기 있는 단편들 전부 장편으로 풀어도 진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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