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쑤통의 ‘나, 제왕의 생애’를 읽고 - 함지현>

 

 주인공 단백은 처음에는 거대한 섭국의 제왕, 두 번째는 줄타기의 제왕, 마지막 여생은 한 밭두렁의 왕으로 인생을 살아 왔다. 그의 인생은 세속의 중심에서 속세를 벗어나기까지의 긴 여정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제왕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단백이 처음 제왕으로서의 삶을 열던 날, 각광 스님이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 논어를 읽기를 권장한다. 그것을 읽지 않고 치워두던 단백은 ‘먼 길을 돌아’ 고죽사에 당도했을 때 읽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 ‘나는 어떤 날은 이 성현의 책이 세상 만물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고 느꼈고, 또 어떤 날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느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제왕의 의미라고 생각된다. 처음 섭 제국의 군주로 살아가는 단백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 혜비를 지킬 수 없었고 마음껏 울 자유조차 누리지 못했다. 폐서인이 되었을 때의 단백은 비록 알거지였으나 오히려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 발 닿는 곳 어디든지 그의 거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제국의 패망이라는 거대 담론보다는, 자유를 찾기까지의 단백의 내면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섭왕 때의 단백의 서술은 신경질적이고 잔학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정도였다. 폭군 단백이 유일하게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장면은 품주성에서 연회를 볼 때와 처음으로 혜비를 만났을 때뿐이었다. 그에 비해 광대로 세상을 떠돌다가 고죽사에 머무를 때의 서술에선 단백의 심정 평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연랑을 묻고 꿈을 꾼 장면을 인상적이었다. 삶의 미련, 대섭궁의 마지막 인연인 연랑을 끊어내자 비로소 자유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아직 날려 보내지 못한 ‘나’라는 새 때문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대체 어떤 미련을 끊어야 그 새는 날아갈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