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난 사과나무 곁을 지키겠어요.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를 읽고

 

 

 

 보는 내내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명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명언을 몸소 실천하듯이 주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과나무를 열심히 심었다. 그는 왜 그렇게 사과나무에 집착했을까? 사과밭은 야에코 가족의 삶 자체이며 가장을 죽인 가혹한 현실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런 야에코의 밭에 열리는 사과가 제일 맛있다고 여기는 그는 야에코 뿐 아니라 그녀의 인생 전체를 사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와 사과나무 골짜기로 갈 수는 없었다.

 

 그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마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잔인한 세상-을 사과나무로 채워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야에코의 아버지가 죽은 소방 도구 오두막을 없애고 자신과 야에코의 나무를 접목시킨 어린 나무를 심을 결심을 하는 장면에선 과거의 아픔마저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겨내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사랑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법사’라는 분신을 내세워 자신의 그런 일부를 방황하게 한다. 하지만 그 법사조차 손에 빨갛게 익은 사과 한 알을 쥐고 숨을 거둔다. 좌절과 고통마저 사랑 앞에 사그라진 것이다.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다른 비극들처럼 처참하거나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서글픈 까닭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어조 때문일 것이다. 슬픔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보다는 무표정하게 있는 사람이 더 처연하게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또한, 한 편의 시 같은 서술이 자아낸 몽환적인 분위기도 한 몫 다. 소설을 읽는 느낌보다는 한 폭의 병풍에 쓰인 시를 읊조리는 기분이라 여운이 길게 남았다.

 

 책을 덮고 가장 생각나는 구절은 ‘그곳(그 사과밭)에서는 나와 야에코 그리고 백구만 살 것이다.’이었다. 중학교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오르게 해서였다. ‘달에 울다’의 ‘나’에게 사과 골짜기가 있었다면 이 시의 화자에게는 마가리가 있었다. 언젠가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장소를 꿈꿀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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