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개츠비 주제에 의한 아홉 개의 변주곡
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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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A.

(재즈시대 미국, 늦가을 어느 토요일 밤 뉴욕, 이스트 에그. 개츠비 저택의 해변가.  '불길하고 위협적인 또 한 차례의 십 년'을 목전에 둔, 서른 살 생일을 맞은지 얼마 안 되는 남자가 '모래 위에 벌렁' 드러누워있다. '조류를 거스르는 배' 어쩌구 중얼거리던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슨 일이오. 형씨[old sport]? 후후... 아. 그런 표정으로 이 말, 이상하게 듣지 말아요. 당신 얼굴을 보니, 내가 지난 여름 바로 이곳에서 개츠비가 나를 그렇게 불렸던 게 기억나네요. 그래요. 이상한 말이죠? 그게 나한테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친근함이었는데, 어떤 사람에겐 질투와 증오에 불을 붙이는 말이덥디다. '경솔한 사람들[careless people]'말에요.

내일이면 뉴욕을 떠난다우. 이제 동부라면 지긋지긋해. 교양? 세련? 웃기는 소리에요 다... 아. 형씨는 어떻게 생각하우? 지금은 차가운 비 맞으며 묘지에 누워있을 이 집 주인 말이오. 뉴욕 사람치고 이 집 주인을 모를 리는 없을테니. 아... 제발. 노란색 쿠페, 치정극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선 안되요. 그 사람은... 그야말로 영웅없는 이 평화로운 시대에 '위대한'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남자란 말이오. 뭐라구? 좋아할만한 가치가 없는 경솔한 여자 좋아하다가 비명횡사한 사람 아니냐고? ... 당신 역시 경솔한 사람이구만. 이봐요. 형씨. 내 한 번만 이야기해줄테니 잘 들어요. 그 남자.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 '낭만적 민감성' 그 자체였던 그 남자가 얼마나 위대한 가치를 온 삶에 걸쳐 밀어냈는지 알기나 하시오?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돈'으로 환원되어, 가장 순수한 감정 마져도 그 쇳가루의 비린내에 밀려버린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도, 얻을 수 없을 거 알면서, 그 경솔한 여자의 가치가 이미 빛바래었을걸 알면서, 자신이 가진 순수한 감정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끝까지 밀어부친 남자가 무가치하다는 말이오? 사랑의 시지푸스란 말이오.

 그와 비슷한 삶을 밀어낸 눈 밝은 글쟁이가 있다면 주저없이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그의 삶을 써내려갈거요. 아니, 거기서 그칠 리가 없지. 분명히, 그 글쟁이는 이 남자의 삶을 평생동안 명도만 다르게 해서 그릴 게 틀림 없소. 부도 명예도 없던 시절의 비참함과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고 세속적 성공에 대한 갈망, 설사 그중 하나를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이룰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켜나가는 순수한 사랑과 낭만적 민감성, 그리고 그 과정에 짙게 배여나오는 우수와 쓸쓸함, 또 파국적 결말까지... 그는... 개츠비는. 그런 남자였다는 말이오. 알겠소? 형씨?

 

variation I. 어리석은 자만이, '다시' 바빌론을 찾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개츠비를 생각해 보자구. 부와 명예같은 물질적 성공에 사랑스러운 아내와 귀여운 딸. 걱정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이들이 가장 화려한 날을 보내기에 어울리는 곳은... 그래. 아마도 파리일거야.

이봐. 자네. 사람이 언제 망가지는지 알아? 더 이상 추구할 게 없을 때, 지금의 삶이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울 때라고. 물질적 성공과 사랑. 두 가지 모두 자기 손 안에 있는데 뭐가 더 아쉽겠냐고. 그저 하루하루 즐기기에 바쁘겠지.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 - 그게 처제라 할 지라도 - 눈에 뭐 보이겠어. 오늘도 내일도 없는 듯이 감각적 쾌락을 즐기기에 바쁠거야. 자 근데 그 삶의 기반이 송두리채 무너져내린다면 어떨까. '사소한' 다툼이 어떻게 꼬이다보니 아내는 세상 저버리고 대공황 맞아 하루아침에 전재산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려 어쩔 수 없이 처제 집에 사랑하는 딸까지 맡겨 버리고 그 왠수놈의 '돈' 때문에 홀로 타향을 떠돌아야한다면.

다시 그 남자는 파리로 돌아와. 대공황 전 흥청망청하던 파리의 호화로운 분위기는 흩어저려버렸겠지. 어깨를 같이 들썩이며 샴페인을 기울이던 사람들도, 눈이 부신 네온사인도 없이, 파리 거리거리를 걷는 이 남자의  몸과 마음에 그저 추적추적 비만 뿌려지고 있다면. 한국 사람들이 절터라는 데에 가서 흐트러진 수풀 가운데 넘어진 댓돌 위에 앉아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 그럴 거야. 이쯤되면 알 거야. 그남자가 처제에게 넘어간 양육권을 되찾아 옛날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는 꿈이, 한낮 미망에 지나지 않음을.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분명 그 남자는 달라졌는데말이지? 건실한 기반도 다져놓고 그의 달콤한 시절을 무너뜨렸던 알콜중독의 마수에서도 벗어났는데도? 모르는소리. 한 번 아닌 건 돌이킬 수 없는 거라고. 쾌락에 젖어 흥청망청 살던 시절의 작자들이 처제의 집으로 들이닥쳐 깽판을 벌였기 때문에 그가 쓸쓸히 파리를 뜰 수 밖에 없던 게 아냐. 모든 걸 가졌던 시절의 그림자 때문이라구 그 날건달들의 모습이 곧 그의 과거였고 차마 다 떨쳐내지 못한 현재였다고. 동양에서 말하는 업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어. 중요한 건 돌이킬 수 없는 걸 추구하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걸 이 남자가 몰랐다는게지.

이제 알겠어? 오로지 바보들만이 좋던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더 머저리같다면 혹시나 하고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려하겠지. 그리고 남은 평생동안 그걸 후회하고 괴로워할거야. 그러니 돌아보지마. 그리워하지도 말고.

 

variation II. 가장 지독한 사랑, 자기애. 혹은 순수와 위선 사이.

육체적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그에 발맞추지 못하는 더없이 빈약한 정신세계를 가진 여자의 추한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남자 저남자 문어다리 걸치듯 만나며 서로 다른 종류의 짜릿함만을 추구하는 여자가 결국 파멸하는 모습을, 건실하고 예민한 낭만적 감수성을 지닌 청년의 눈을 빌어 간접화법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나. 이 소설을 끌어나가는 건 물질적 성공을 착실히 이루어나가는 청년 덱스터이다.

가진 건 없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를 성취할 능력이 있는 청년이 캐디 노릇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던시절부터 선망해오던 아름다운 주디. 그 여자를 옆에 둘 만한 물질적 성공을 거며쥐었을 때에도 이승환의 노랫말마따나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날 뿐"으로 머무를 수 있을 뿐이다. 여자 하나에 열 두명의 남자. 번갈아가며 서로 다른 매력을 즐기는 이 여자, 남자 다루는 솜씨도 능수능란해서 어느 한 남자가 '삐질'타이밍이면 어느새 달려와 달래주어 그 '일부다처'적 관계를 이어가는 이 여자를, 덱스터는 진정 사랑한 것일까. 성실하고 착한 약혼녀를 등져버리고 파국으로 치달을 걸 알면서도 주디를 안은 덱스터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덱스터가 사랑한 건, 정확히 말해 덱스터에게 중요했던 건 '누군가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의 순수함일거다. 사랑에 빠져 있는 자기 모습, 이 때만은 누구보다도 순수하다는 생각(혹은 착각)에 빠져 있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고작 한 달도 지속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주디의 호감에도, 그녀의 거짓에도, '어떤 반감도 어떤 즐거움도 초월해(p. 83)'있던 거 아닐까. 이렇게 읽으면 마지막에 흐르는 그의 눈물, 더 이상 '순수의 시대'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음에 애통에 하는게 가증스러움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런데말이지. 그의 위선과 개츠비의 순수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variation.III 그 버릇 어디 못 간다.

서른 두 살의 장년이 된 두 사람이 학창시절의 애틋한 감정을 떠올린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만큼 십여 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그때의 핑크빛을 다시 찾아가는거. 이거 뻔한 얘기지만 옆에서 보긴 더없이 즐거운 이야기잖아.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치면서 끝을 ? 꼭 비슷한 시대 살다 간 오헨리를 생각하게 되잖아?  짤막한 길이에 뒤통수 치는 반전과 여운. 한번쯤은 이런 단편을 누구나 쓰고 싶나봐. 근데 피츠제럴드는 어쩔 수 없나봐. 글 전체에 이루지 못한 사랑과 물질적 성공,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동경을 짙게 드리우는게. 도회적이고 쓸쓸한 분위기는. 좀더 냉소적이고 세상 물정 좀 더 아는 오헨리의 단편이라고 할까. 아니아니. 피츠제럴드는 피츠제럴드일 뿐이야. 그저 그가 쓴 의외의 결말이 뒤통수친다고 해 둬야지. '개츠비스런'인물의 냄새는 풍기면서말이지. 순수를 찾는 남자와 다소 줏대없고 어리석기까지 한 여자.

그러고보니 도대체 피츠제럴드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 왜 다 이모양인거야?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멋진데.

 

variations. IV 분별 있는 남자의 항변.

날 '개츠비적' 인물로 분류하지 말아주슈. 뭐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건 맞지. 물질적 성공과 사랑을 꿈꾸는, 충동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건실한 청년이긴 하지. 그런데.첫번째 변주곡의 웨일스나 두번째 변주곡의 덱스터처럼 무분별하게 유혹에 완벽히 굴복하지는 않잖수. 그저 불화와 의심 속에 서로 망가져가는 한 커플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그래요. 뭐 그여자가 자꾸 나한테 꼬리치는게, 그들의 파국에 일조했다는거. 크게 부정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캘먼 씨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스텔라가 내게 매달릴 때, 늦긴 했어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구요. 내가 '다시 돌아올게요'라고 했다고, 나도 파국이 뻔히 보일 사랑에 매달릴 어리석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니깐. 난 그때 더없이 화가 난 목소리(p. 136) 있었다구.

난 그런 사람이라구요. 한때 유혹에 흔들리긴 해도 금방 사리판단을 냉철히 해 내는. 알겠어요? 아마 개츠비의 판단력이 지난 시절의 사랑에 대한 미련과 갈망에 흐려지지 않았더라면 나와 똑같이 행동했을거라고.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경솔한 여자를 내쳤을 거라고.

그래서말인데. 그 과부 집을 떠나온 뒤 내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수? 그 이야기를 왜 끊었나몰라. 아마 그 벌이었을지도 몰라. 자기가 맨날 여자와 주위 환경때문에 결국 주인공 망가지는 이야기만 쓰다가 나처럼 분별력있는 남자 이야기를 쓰다보니깐. 젠장. 나도 성공한 모습 길이길이 남기고 싶었는데. 쳇. 그래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을거유. 나 조얼 콜스가, 이 글쟁이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고. 뭐? 뒤에 아예 제목에 '분별력'을 박은 사람 얘기가 나온다고? 쳇...

 

variations V. 이루지 못할 꿈, 차라리 모른다면.

개츠비가 왜 불행해졌는지 알아? 이루지 못할 꿈을 모든 걸 던져서 이뤄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안되는 걸 어거지로 되려 하는게, 억지 부리는 게 다 그쪽으로 흘러 갈 수밖에 없는 거지. 파. 국. 이란 걸로.

근데 사람이라는게. 알면 어떻게든지, 좋든지 나쁘든지 그쪽으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잖아? 그런 거잖아? 근데말야. 아예 그 꿈을 모르게 하는 게 어떨까. 그게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전 시점으로 어떤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게 말야. 오랜 몸과 마음의 병에서 깨어난 이 여자, 남편이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은지도 모르고 조금 늦는 거라고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더없이 행복해 하겠지. 이 행복을 최대한 늘려주는게 이 여자에게 좋은지도 모르잖아.

근데 문제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처음에 그 의사가 이 여자의 이야기를 어디서 꺼냈는지 생각해봤어? 중세의 고성 이야기 하다가 그랬잖아. 분위기 어둑어둑해지려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꺼냈다고.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지.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무지와 미망을 옆에서 지켜보는게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아냐고.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크면 이 의사가 또 그럴까. '제발... 비밀 지하 감옥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시다.' 정말. 사랑이란거. 어느 정도는 차라리 모르고 그냥 좋아만 하고 살아가는게 나은지도 몰라.

 

variations VI. 피츠제럴드의 지독한 빨간 구두.

가끔 난 생각한다우. 젤다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일까. 피츠제럴드가 여자주인공에 대해 도무지 좋게 쓴 글을 찾을 수 없는걸 보고는 지독한 여성 혐오에 빠져 산 게 아닐까.

대략 분위기 보니깐. 이블린은 젊은 시절,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나오는 '경박하고 가볍고 경솔한'여자야. 오죽하면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난 당신에게 당신과 마찬가지로 딱딱하고 아름답고 속이 텅 비어 있고 쉽게 속을 훈히 들여다볼 수 있는 물건을 선물로 보내겠어(p. 149).'라는 저주 섞인 말을 던졌을까. 그런 '경솔한'여자의 댓가가 어떤 건지, 작정하고 펜을 잡았던 것 같네.

좀 해도 너무하지 않아? 젊은시절 좀 경솔하게 행동해 어느 남자에게 상처주고, 결혼하고 바람 좀 폈기로서니 딸은 '컷글라스 그릇' 모서리에 손 벤 데 패혈증 올라 손목 자르게 되고, 남편 사업도 아작나며,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컷글라스 그릇'에 담겨진 전사통지서를 통해 받더니, 결국엔 '컷글라스 그릇' 안고 '절망의 소리를 부르짖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 땅 아래로....(p. 185)'라니. 그녀는 피츠제럴드의 '빨간 구두'가 아니었을까. 설마. 여기에 젤다를 투사하지는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야.

근데말이지, 이 짧은 소설에 끌린다면 아마도 한때 유행하던 컷글라스 그릇 세트의 운명과 이 기구한 팔자를 지닌 여자의 일생을 병렬적으로 대비시켜가며, 그리고 그 영롱한 빛깔의 섬뜩함과 이여자의 운명을 정교하게 묘사해 낸 데 있을거야. 그래서 그냥 기분나쁜 현대판 '빨간구두'이야기 듣고 치워버리자. 하는 느낌이 덜할지도 모르지.

 

variations VII. 사랑의 가장 지독한 변수, 시간에 대하여.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지나가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p. 213)' 마지막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연애소설 역사에 남을 것이다.

지금은 사랑할때가 아니고 다른, 뭔가 중요한 일을 할 때라고. 이 일을 먼저 하고 사랑을 찾을 거라고. 그래. 그때의 마음만은 진지하겠지. 그리고 진심이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소년과 소녀는 알게 된다. 시간과 함께 사랑도, 마음도 흘러 버림을. 다시 찾는 마음은 그때의 사랑이 아님을. 만물유전이라는 말이 그처럼 서글픈 게 없음을. 그걸 인정하고 난 다음에야 소년은 청년으로, 소녀는 숙녀가 되는지도 모른다. 첫사랑, 한때 사랑했던 사람 다시 보는 게 아니란 말 괜히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겨우 서른 페이지 남짓한 이 짤막한 변주는, 옛사랑에대한 그리움에 가끔 가슴 울컥하는 사람들에 대한 헌정이다. 돌아보지 말기를 이처럼 간곡하고 애절하게 쓰기도 힘들테니. 그래서 별 말 붙이기 힘들다. 그냥 이렇게나 말해보리라. 지나간 사랑이 떠오르는 사람들, 그저 붙잡고 읽어보라고 말이다.

'분별 있는 일 - 그들은 분별 있게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능력과 바꾸었고, 절망으로 성공을 빚어냈다. 그러나 삶은 젊음과 함께 그의 사랑의 신선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p. 210)'

 

variations VIII. 파멸하지 않는 개츠비는 행복할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영웅은 그 가치를 잃는다고 했던 게 조셉 캠벨이던가. 개츠비를 읽은 사람들이 간혹 그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개츠비가 자신의 예민함과 순수를 적당히 억제할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부잣집 아이'앤슨이 그렇다. 개츠비가 바라마지않던 세속적 부와 명예는 처음부터 갖추고 있었고 손만 제대로 뻗는다면 자신에게 호감있는 여자와도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그에게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경솔한 행동을 하고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가가지 못하며 잡아야 할 시점에서도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그 타이밍도 놓쳐버린다. 이후 그의 일생은 그녀, 폴라에 미치지 못하는 여자들과 그냥저냥 호감과 혐오를 오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그저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뿐이다.

'주인공'이란, '영웅(주윤발大人같은 통속적 분위기 말고, 조셉 캠벨이 말하는 "영웅" 말이다)'이란 그런 거 아닐까. 극단적적 가치를 끝까지 추구하지 못하는 인물은 이렇게 흐지부지 묘사될 수 밖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 변주의 마지막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 던질 상대를 찾지 못하고, 그러지도 못하고, 그저 남들에게 잘 해주는 걸로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우월감 속에, 그 외로움 속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래서다. 극단적 감정의 문제에 있어서, 애매함과 적당함은 그 어느 것 보다도 나쁘다.

"세상은 오로지 극단적인 것을 통해서만 가치를 가지고 오로지 평균적인 것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츠바이크의 이 금언을, 피츠제럴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평균. 행복하지는 않지만 불행하지는 못하는, 비참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작곡을 한다면, 이 변주곡의 선율이 아마도 가장 지독한 단조로 작곡될거다.

 

variations IX.  개츠비의 시대는...

난장판. 오월제라는 제목은 명목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모두 미쳐돌아가는 카니발이라는 표현이 걸맞는지도 모르겠다. 1차세계대전의 종전 후의 희망찬 분위기. 라고 썼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긴장이 완전히 풀려 다들 자기 욕망을 분출해 내기에 정신없는 시대다. 재능에 대한 확신을 잃은 어느 화가 지망생은 푼돈을 '잘 나가던 시절'의 옛 친구에게 구걸하고 그 친구는 적당히 비웃고 적당히 외면한 채 '지금까지도 잘 나가는'친구들과 어깨 들썩이는 파티에 나간다. 이 흥청망청한 분위기에 사회 밑바닥 인생으로 여기저기 치이는 승전국의 패잔병 - 자기 나라의 승리가 참전 군인 일생의 승리가 아니기에 - 들이 끼어든다. 당연히, '잘 나가던 시절'의 옛사랑도 그 자리를 거듬은 말할 필요도 없고. 모두다 자기의 욕망을 분출하기에 여념이 없던 오월제가 흐르자, 광란의 분위기에 휩쓸려 누군가는 다리가 부러지고 누군가의 인생은 머리가 깨어져 으스러진다. 역시나 '피츠제럴드적'인 여자는 세속적 가치가 머물지 않는 옛사랑 앞에 매몰차게 뒤돌아서고, 이에 그 남자도 그날의 오월제도 미쳐 돌아간다. 사랑도 명예도 세속적 성공도 모두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남자는 끝내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미망만 남은 사람은 그런 거다.

아마도 피츠제럴드가 바라보았던 재즈 시대의 아메리카가 그랬을거다. 물질적인 풍요와 동시에 넘쳐 흐르는 말초적 쾌락의 충족,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금주법'의 도덕적 위세는 허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그의 글이 어둑어둑하게 마무리되는지도 모른다. 다들 미쳐돌아가는 카니발의 끝이란 그런 거다. 지독한 숙취에 머리 지끈대며 침대 짚고 일어날 때, 어제 파티에 썼던 구겨진 가면을 밟았을 때의 기분 말이다.

 

Finale.  Adagio Catabille

날이 밝아오는군요. 어이. 올백머리 형씨. 당신 직업이 뭐요? ...없어요.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관두고... 글을 쓰고 있어요. 글? 후훗... 한때 예일 뉴스를 쓰던 시절도 있었는데... 난 형씨가 작곡가였으면 좋겠수. 이 남자의 삶, 꽤나 로맨틱한 음악이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이를 말입니까.

...형씨, 형씨는 찾고 싶은 게 있어요?
황금 모자, 황금 모자요.
형씨?
그리고 뛰어오를거요. 그녀가 외칠 때까지... 당신을 차지하겠노라고.
...
고마웠소. 말 섞어준거. 형씨라 불러준거. 이름이?
닉 캐러웨이. 당신은?
(올백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는 엷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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