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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관찰학 입문
아카세가와 겐페이.후지모리 데루노부.미나미 신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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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라픽스 노상관찰학입문 서평단에 신청했다. 아무 길이나 다니며 이것저것 보는 건 내 오랜 취미기도 해서 따로 집구경 프로젝트도 하고 출사모임도 하고 작년부터는 도시 식물 구경하는 모임도 하고 있다. 나 정도면 노상관찰학 멤버에 낄 정도는 되지 않나 싶었다.


책을 열어보니 저자인 아카세가와 겐페이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길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기록한 것들을 소개하고 대담을 나눈 게 실려 있다. 그들에게 도시가 재미있는 놀이터처럼 느껴지고 자신들을 세상의 기준에 안 맞는 괴짜처럼 여기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노상관찰학이 엄밀한 학문이 아니라 일종의 동아리나 예술 작업에 가깝다는 것도 좋았다.


근데 노상관찰학 주요 멤버인 겐페이가 말하는 '초예술 토머슨'이 뭔지 잘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게 이해가 안되니 이 사람들이 당최 왜 모여서 이걸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이 책이 시리즈 두 번째 책이고 첫 번째 책이 초예술 토머슨이기 때문에 1권을 안 읽고 이해하긴 어려운 게 당연한 것일지도.. 결국엔 1권도 구매해버렸다. 이게 전략이라면 성공입니다!



초예술 토머슨은 사진의 계단처럼 도시에 남아 튀어나와있는 어떤 것인데 자세히 보면 그 쓰임새가 없는 무용한 것을 말한다. 무용하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 잘 보살펴지고 있는게 핵심이다. 그건 의도적인 예술품을 넘어선 초예술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 뒤에 붙은 토머슨은 실존했던 야구선수 이름이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홈런타자로 기대를 받던 토머슨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영 공을 맞히지 못하고 삼진만 당했다. 그것이 바로 무용의 결정체라며 저자인 겐페이가 토머슨이라는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진심으로 그를 존중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누가봐도 능욕에 가깝지 않나 싶었다.


한 잡지에 이 토머슨 사례를 실은 이후로 전국에서 토머슨의 사례들을 제보했고 1권 초예술 토머슨은 이러한 기고들을 모아 쓴 것이다. 2권 노상관찰학은 토머슨을 포함하여 길위의 무언가를 보고 기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나하나 재밌고 유머스러운데다 중요한 개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는 내내 즐겁다. 방귀 관찰일지는 충격에 가까웠고. 그러니 1권부터 차례대로 읽기를 권한다. 책을 보고 있자니 비슷한 뭔가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초예술 토머슨처럼 저자인 겐페이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고 해서 그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이게 다 40년 전에 벌어진 일이라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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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이디스 워튼 지음, 최현지 옮김, 하성란 추천 / 엑스북스(x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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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이름은 낯선 편이었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을 아직 읽지 못해 소설 쓰기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도 그녀가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구현했는지 같이 떠올리지 못했다. 이름이나마 들어본 <순수의 시대>를 독서 목록에 올려놓았을 뿐.

 

그럼에도 이 책을 완독한 건 책 제목에 들어간 도룡뇽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도룡뇽의 정체를 밝히기 앞서, 먼저 이 책의 정체성은 꽤나 모호하면서 독특한 편이다. 명백히 소설 쓰기의 방법론을 가르쳐주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이디스 워튼의 개인적인 에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작가가 둘 사이의 경계에 있음으로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소설 쓰기의 중요한 시사점, 응당 소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요소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며 받아들이게 하는데 대신에 그걸 어떻게 구현해야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풍부하고 훌륭한 사례들을 모아 소개하는데 그녀의 주요한 활동기가 1900년대 초반이란 걸 감안하면 모두 그 당시 혹은 그 이전에 만들어진 소설들이 대부분이다. 아주 익숙한 고전이 있는가하면 처음 들어보는 소설과 작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나의 독서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지만, 나처럼 소설 쓰기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도 이 책 하나로 무언가를 깨우치기보단 상당한 번외공부가 필요할 듯하다.

 

그걸 제외한다면 책에서 말하는 소설소설 쓰기의 태도와 핵심은 매우 적절하다. 적절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초반부 문장 몇 개를 인용해보면

 

그 장면을 구현하는 이야기가 독자의 주의를 끌고 뇌리에 남도록 만들기 위해선 그 순간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무언가, 익숙한 사회적 도덕적 기준과 맺는 명시적인 관계, 혹은 한 인간의 충동 사이에서 버어지는 끝없는 투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 24P

 

어떤 형태로든 독자의 무의식적이나 끈질긴 내적 질문,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거지? 이 소설이 내 인생의 어떤 판단을 담고 있을까?”에 대한 일종의 합리적인 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37p

 

단편소설의 주된 의무 중 하나는 독자에게 즉각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모든 구절이 이정표가 되어야 하며, 절대로 (의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독자는 안내자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46p

 

벤베누토 첼리니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둘 다 불속에서 도룡뇽을 보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때도 그 순간의 광경은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귀를 감쌌고, 그로써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결코 잊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60p

 

도룡뇽은 바로 이 타이밍에 등장한다. 중심부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독자의 기억 속에 소설을 완벽히 각인시키는 존재.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한 존재이다. 왜 어떤 소설은 다 읽기도 전에 페이지에서 멀어지게 만들며, 어떤 소설은 소설보다 소설 외적인 것에만 관심이 가게 만드는가. 소설을 이야기로써 가치있게 만들며 독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어떤 존재가 소설에는 필요하다.

 

책의 이후 내용에서 보다 상세한 내용을 다루긴 하나 이 책의 가장 큰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디스 워튼의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으나, 어떻게 보면 이전의 고전 소설들이 쌓아온 소설을 소설답게 만드는 가치를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인간이 이야기에 반응하고 소설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요소에 신경쓰기, 그게 소설을 지배하게 만들기. 대부분의 독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그들의 내적질문를 충족하며 쉽게 방향을 읽고 마는 그들에게 정확한 이정표를 세워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걸 다짐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물론 이디스 워튼의 소설을 읽고 다시 살펴봐야할 책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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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과 실 - 잡아라, 그 실을. 글이 다 날아가 버리기 전에
앨리스 매티슨 지음, 허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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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딘가에서 정말 괴로워하며 진지하게 소설을 쓰고 있는, 그러나 아직 소설로 빛을 발하지는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친절한 충고다. 작가는 시인 및 소설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위해 20년 이상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고, 당연하게도 자신의 작품으로 문학상을 비롯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나는 앨리스 매티슨의 소설 작품을 읽은 적이 없음에도, 소설을 잘 쓰는 일과 소설 쓰기를 잘 가르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 책에서 보여준 친절함 때문에 작가를 신뢰하게 됐다. 


먼저 작가는 자신이 겪은 수강생들의 소설과 그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예를 들면 


“가끔 작가 초년생이 쓴 소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사건을 생각해 내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 사건에 대해 쓰기를 원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창작을 가르치는 강사들은 말하는 것보다 보여 주는 것을 옹호하기 때문에 …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규칙에 어긋난다는 믿음이다.”


와 같은 문장을 통해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들을 정확히 짚어내 설명한다. (그들이 왜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지는 책을 참고하길.)


그러한 충고가 값진 이유는 앨리스 매티슨이 정말 재능 있고 멋진 작가, 혹은 아주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이유 대부분은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겪는 몇몇 어려움 때문인데 앨리스 매티슨의 확고한 어투가 믿음을 준다. 그건 누구나 겪는 일이며, 누구나 괴로워하며 감내하는 일이라고. 그 안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결국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말이다.


“우리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할 글을 쓰게 될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밖에 없다.”


“글을 쓸 때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듯이, 우리 모두 더욱 용감해져야 한다. 잘못되어 봤자 얼마나 잘못되겠는가?”


이 책은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확실한 실용서는 아니며 오히려 글 쓰는 사람들과 연대를 이루고 싶게 만드는 에세이가 맞을 듯하다. 나도 책의 인상 깊은 구절들을 사진으로 찍어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공유했고, 대부분 명치를 때리는 말들이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긴 시간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글을 써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지구 건너편에 있는 너도, 역시 괴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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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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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는 정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대략 3개월 동안 겐조라는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그는 외국에서 유학한 지식인이고 처와 자식, 누나와 형, 장인어른, 어린 시절의 양부모 등이 끊임없이 그를 찾아와 돈을 요구한다. 그는 그들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의 부탁을 냉정히 거절하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자신의 일을 하는 시간과 건강을 해쳐가면서도 현실의 상황을 잘 헤쳐나가지 못한다.


사실 그는 현실의 수완이라고 하는 게 부족한 사람이고 돈을 잘 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상황은 더 비참하고, 어떻게든 돈을 변통해서 그들을 돕는다. 그 인간들 특히 처와 자식에게까지 어떠한 애정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그의 고통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눈팔기의 일본어 원제는 길을 걷다 풀을 쳐다보는 딴짓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가 길을 걷는 일,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딴짓을 통해 상기된다. 딴짓을 하다보면 무엇을 위해 길을 걷는지에 의문이 생기고 그 목적을 생각하며 다시 길에 돌아가게 되는데 누군가는 거기서 길을 걷는 목적 자체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당장이 너무 바쁜 아이들의 가슴엔 한 번도 이런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들 스스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물론 지금 어떻게 '할' 것인지 따위 생각할리 없었다.” - 본문, 234p


"당신 마음에 드는 인간은 어차피 어디에도 없을 걸요. 세상엔 온통 바보 천치들뿐이니까요." 겐조의 마음엔 이런 풍자를 웃어넘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주위 상황은 도량이라곤 없는 그를 점점 더 옹졸하게 만들었다. - 본문, 259p


목적을 설정하고 그걸 이루면서 사는 일은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상상하며 이루어진다.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삶이 차츰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만약 그런 상상을 할 수 없다면 그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한 삶은 무엇을 위한 삶인가.


소설이 그런 의문을 던지고 있는데 반해 이 소설이 일본의 국민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역사에 남을 소설들을 써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일에서 해답을 찾은 걸까. 이런 생활 속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위대함을 어떻게 지켜냈던 걸까. 그건 이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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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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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해가 안돼도 오랫동안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2. 카메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는 영화 같은 것들을 좋아했다. 직접 말하지 않고도 전해지는 것들을 찾아 오랜시간 헤매었는데 어쩌면 비슷한 경로로 독창적인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게 된 누군가를 만나면 참 부럽다.


3. 박솔뫼 작가의 <그럼 무얼 부르지>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 책과 <우리의 사람들> 사이의 다른 책들은 읽지 못했다. 그 책과 이 책의 시간은 10년정도의 차이인데 그때는 조금 더 소설 같았고 지금은 조금 더 목소리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고 생겨난 생각을 생각하는 모습은 여전한데 왠지 소설보다는 목소리가 단단해보인다. 안심이 좀 된달까. 방심하고 흘러가듯이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하자 흐르는 소설에 무방비하게 몸을 맡긴 것만 같았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졸았는데 "마음에 걸리고 불편한 것을 싫어해서요."라는 말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내가 예전에 만들었던 영화에 대해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걸리고 불편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에 걸리고 불편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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