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외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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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매겨진 단락은 2017, 실제로 내가 겪었던 일의 기록이다.

나는 최근 주디스 버틀러의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를 읽었고

+표시를 통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주석을 달았다.

글에서 인용된 문구는 모두 이 책에서 나왔다.

 

01

H형과 나는 그날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로, 같이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고, (결국에는 둘 다 언론사에 가지 않았지만) 가끔 만나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그날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나 촛불집회의 추세가 거의 최고점을 찍을 때였고, 우리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부터 시작된 왠지 모를 들뜬 분위기에 동조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낙관적으로 보였고, 사람들은 웃으면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비폭력 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아이와 어른까지 안심하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로니에 공원에서부터 시작된 대열에 합류했다. 각지에서 온 노동단체, 학생단체, 문화단체들과 나란히 통제된 차도를 걸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길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환호를 보내며, 방송장비를 싣고 달리는 트럭을 쫓아서 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우리는 처음 경험해본,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우리라고 부르고 실제로도 그런 소속감에 가슴이 고양되던 때이기도 했다.

 

+

공공집회는 지금 이 상황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불공정한 사회적 상태이며, 집회가 책임의 정당화에 대한 분명히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대안을 구축하는 공존을 잠정적으로, 또 복수적 형태로서 실행해낸다는 통찰을 체현해낸다.” - 26p

 

그때 H형과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와 닿는 불안감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회사들에게 거절당했던 탓이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불안정이라고까지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좌절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완전한 불안정성의 토대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우리는 제법 좋은 대학을 다녔고, 주위에서 충분한 성공사례들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둘 다 지방에서 그다지 부유하지 않고, 교육도 충분히 받지 못한 부모 아래에서 성장했으나, 우리 스스로의 힘이라고 믿는 노력을 통해 그때의 상태까지 당도했고, (신자유주의의 가르침에 따라) 당장의 어려움들을 또한 그런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처한 당장의 불안정함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02

종로 5가에서 시작해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은 경찰에 의해 곳곳이 통제되어 있었고 차벽이 세워져 있었지만, 큰 차도만큼은 열려 있었다. 집회에 있어서 경찰은 우리에게 안전한 집회의 장소를 스스로 제공하고, 우리가 비폭력적인 집회를 가능케 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였지만, 결국 집회로 모이는 사람들의 동선을 교묘하게 갈라놓고 있었고,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합류를 자유롭게 원하거나, 새로운 장소로의 이동을 원할 때 그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 지점들에서는 예외 없이 충돌과 폭력이 일어났다. 집회의 참가자들은 버스를 힘으로 밀어서 흔들었고, 경찰들은 최루액이 섞인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렸다. 물론 경찰의 방패와 시민들이 직접 부딪히는 종류의 충돌도 있었지만, 그런 행위들은 비폭력 집회를 유지하라는 요구, 그리고 그런 폭력을 유도하는 사람들을 프락치라고 규정하며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는 요구가 집회를 가득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제어되고 있었다. H형은 그때부터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켜서 영상을 찍었다. 물론 그건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고 있다는 고무된 기분, 주위에 있는 모든 시민이 서로에게 우호적이라고 느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공공장소에 출현할 권리, 이런 종류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관련이 있으며, 폭력의 위협 없이 거리에 출현하기 위한 모든 다른 투쟁과도 관련된다. 이런 관점에서 출현의 자유는 모든 민주주의 투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 81p

 

우리는 신체로 집회에 나타났다. 우리는 광장이라는 공적 공간에 출현했고, 우리의 존재를 서로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내가 집회의 권리가 보호받을 것이라 낙관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후에 박근혜 정부가 계엄령을 고려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우리는 집회에 참여한 우리의 신체를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는 공권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때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어떤 사람이든 집회의 현장에 출현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지나친 낙관은 한편으로는 그 집회에 나타날 수 없던 이들이 충분히 존재했음에도 그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게 해 주었다. H형과 나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우리에 취해있었다.

 

03

H형과 나는 집회를 눈에 담으면서 카메라를 켜고 광화문 광장까지 가게 되었다. 광화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어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가는 길목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쪽은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는 길이 차벽에 의해 막혀있었고 광화문 광장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밀집도가 낮았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일군의 사람들이 차벽에서 이탈한 한 대의 경찰버스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때 차벽을 구성했던 그 차는 유리창이 거의 박살나 있었고 사람들은 버스에 끈을 연결해 당기고 있었다. , 뒤로 차를 흔들어 차가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차가 마치 어떤 공권력이나 정당하지 못한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처럼 돌을 던지고 야구배트로 내려치고 침을 뱉었다. H형은 그 장면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말을 했다. 시민들이 경찰차를 부수고 있습니다. 그 행위는 같이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던 나의 눈에는 뉴스나 다큐멘터리처럼 당면한 장면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는 자연스러운 놀이로 보였다.

 

+

만일 일상생활 자체가 폭력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보호받을 필요 없이 걸을 수 있고 그럼에도 여전히 안전하다면, 이와 같은 권리가 오직 한 사람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더라도 그 안전함은 결국 그 권리를 지지하는 여러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 76p

 

인민은 실제로는 이구동성으로 발화하는 집단적 현전으로서는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민이 누구건, 그들은 확실히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차등적으로,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혹은 전혀 나타나지 않거나 어느 정도로만 나타나고, 어쩌면 어느 정도는 모여 있으면서도 흩어진 채로 나타나기에, 따라서 결국에는 통일체가 아닌 것이다.” - 240p

 

그러니까 우리가 그때 의심하지 않았던 우리의 출현의 권리는 H형과 내가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광장에 나와 있던 모두, 혹은 광장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안전을 바라는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우리의 권리를 지지해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때 시민들이 경찰차를 부수는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행위가 공권력에 대항하는 적절한 행위인가, 그것이 우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감정의 분출을 통한 카타르시스에 불과한 건 아닌가. 가장 중요한 생각은 그 행위들이 암시하는 것, 또 그 행위들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내려질 결정들, 즉 그게 결국은 우리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무엇보다 그때 우리 근처에는 살수차가 있었다.

 

04

'시민들이 경찰차를 부수고 있습니다'에 이어 H형이 한 말은 '여기를 보십시오'였다. 그런데 H형의 말이 울려 퍼지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뭐라고 그랬어? 여기를 보라고? 그들에게는 영상을 촬영하는 우리가 사복경찰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채증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어디 소속이야 라는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당연히 할 말이 없었고, 질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재미로 찍는 거예요 라는 답변을 했는데, 그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태도를 의심에서 분노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재미로 찍는 거라고? 이게 재밌어? 이 새끼들 프락치 아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뺏으려 했고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두려움에 떨며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과 질문에 갇혀서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민주주의를 가령 밀려오는 다중이 만들어내는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견해들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우리는 그런 집단을 함께 유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요구가 공유되고 있는지, 혹은 모두가 느낀 어떤 부정의와 삶의 위태로움, 변화가능성에 대한 어떤 암시가 사태에 대한 집단적 인식을 고양시키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197p

 

사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는 같은 편이에요'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촛불집회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적의와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안전하다고 믿던 집회에 위험을 느꼈을 때. 그때 당시에는 당연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때의 일을 되돌아보며 이 집회에 안전하게 발을 디딜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집회에 참여한 우리는 실은 다른 종류의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권력의 사유화로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 그 이면이 각자의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불만과 그런 불안정성을 해결하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나와 있던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촛불집회가 말하는 것들, 어쩌면 촛불집회를 조직하는 이들의 의도가 들어간 목표와 주장들, 거기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촛불집회의 참가자 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정상성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안정성과 집회가 주장하는 것들을 겹쳐 놓을 수 있었을까? 촛불집회를 우리의 집회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05

그때 H형과 나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살수차였고, 갑작스레 원을 그린 사람들의 무리를 흩어놓기 위해 물줄기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물을 맞으면서 흩어졌고, 그 틈을 타 H형과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H형은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 자신이 찍은 영상을 모두 지웠다. 우리는 황급히 촛불집회를 빠져나와, 다시 종로로 돌아가, 지하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그 중국집에는 어디선가 밀려온 것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거기 앉아 중화요리를 시켜 술을 마셨고, TV로 촛불집회를 지켜봤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촛불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

우리에게 할당된 젠더나 섹슈얼리티 규범들 안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지 못한다면, 혹은 오직 크나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정 가능성의 한계 지점이라 할 만한 상태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때에 따라 끔찍할 수도, 흥분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 한계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생존 가능성 자체가 의문시됨을 의미한다.” 61p

누군가가 살아 있으나 동시에 자신의 삶이 결코 하나의 온전한 삶으로 여겨진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결코 상실될 수 있는 혹은 상실된 것으로 여겨질 리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이와 같은 비존재의 양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282p

 

그러니까 나는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촛불집회에서 벗어난 불안정성들의 일부, 여성들, 퀴어들, 트랜스젠더들, 빈민들, 장애인들, 무국적자들, 아울러 종교적 인종적 소수자들 또한 자신들의 불안정성을 촛불집회를 통해 이야기했었는가? 그들의 이야기는 받아들여졌는가? 촛불집회에서 그들의 자리는 어디에 있었나? 나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내가 느낀 연대는 진정한 연대가 맞는가? 그들은 어떻게 비존재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이제야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것인 이 삶, 더 넓게는 사회적 삶이기도 한 이 삶, 즉 내가 살고 있거나 살고자 노력하는 삶과 가치의 담론적 질서들과 내가 비판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살아 있는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 삶에 대해 신중히 사유해야 한다.

-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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