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스로를 '프티부르주아 리버럴'이라고 규정하는 유시민 씨가 나름의 입장에서 정리하여 바라본 한국현대사 이야기. 이 책은 정치에 직접 몸을 담궜던 자유주의 지식인으로서 그의 입장과 체험이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는 역사서이다. 

 

한국현대사를 1차적으로는 시대적인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2차적으로는 경제사 및 정치사·사회문화사를 분류하여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상당히 교과서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체험사 및 미시사와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한 거시사를 잘 버무려 서술한 것도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이다. 동시에 이 책은 역사 해석을 둘러싼 여러 정파적 논쟁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역사가 자신의 관점을 바로 세우고, 또 독자들에게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자 한다. 이런 점들은 훌륭한 역사서가 갖는 분명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저자의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이 갖는 역사서술의 한계 또한 지적하고 싶다. 그는 독재정권 시절에 정치적인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시대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는 훌륭했지만, 자신이 지지하던 세력이 집권했던 시절에 대해서는 보다 올바르고 공정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그가 특히 불공정한 태도를 보여주는 챕터는 '제3장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부분이다. 그는 '독재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민주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존의 통념에 대해 실증적 증거(경제성장률 궤적)를 바탕으로 반박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가난한 한국경제를 이륙·성장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의 상승폭은 민주화 이후 10여년 동안이 그 이전보다 더 컸다"(113p)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경제위기는 모두 보수정권이 일으켰다는 식으로 역사를 정리하는데, 이는 대중들이 민주정권 시절에 체감했던 구조적 경제위기의 심각성, 즉 경제적 양극화 및 노동의 비정규직화를 애써 부정하려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정권은 사실상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산업정책을 포기하고 IMF 이후 도입된 저성장 국면의 금융화 정책만 추진했기 때문에, 순전히 표면적인 경제성장률만을 중심으로 민주정권을 변호하려는 그의 태도는 지극히 모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민주정권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세계경제의 '대세'로 받아들이면서 김대중 정권의 IMF 탈출을 옹호하는 방식의 서술도 공정하지 못하다. IMF 이후 김대중 정권이 도입한 정리해고, 민영화, 세계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은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적인 성격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국민경제의 자율성을 침해시키고 국가의 재분배 및 사회복지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등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물론 저자가 민주정권 시기에 발생한 여러 경제적 문제들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결과들을 묘사하는 데만 그치고 있지, 이러한 위기들을 불러온 원인에 대해서는 애써 함구하고 있다.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지금껏 펼쳤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노동대중에게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지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다 발본적인 평가가 시급한 요즘, 나는 현대사를 서술하는 관점에 있어서도 기존의 '독재정권VS민주화정권'의 대립적인 시각 또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씨는 지금까지의 역사전쟁에는 두 가지 부류의 분명한 주체가 있었다면서, 하나는 5.16과 산업화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다른 하나는 4.19와 5.18과 민주화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나눈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인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시대에는 보다 급진적으로 사회운동·노동운동을 펼치는 세력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들은 단순히 정치적인 민주화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인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이들은 개발독재정권과 민주정권, 보수정권 등 어느 시기에도 철저하게 억압되었던 노동운동을 새로이 복원시키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건설하는 데 관심을 둔다. 보수정권과 민주정권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던 기존의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를 깨고, 노동대중의 빈곤한 삶을 보다 획기적으로 전환시켜줄 새로운 진보적 정치세력. 나는 이들의 시각에서 쓰인 한국현대사도 많이 출간되어서,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보다 생산적이고 활발한 논쟁이 많이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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