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책은 마르크스나 자본론과는 별 상관이 없다. 책이 제시하는 결론은 오히려 '사회적 경제론'에 가깝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내부에서부터 '변혁'하는 모델이 아니라, 자본주의 '바깥'으로 벗어나 소경영자로서 '착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1부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초과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축적한다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빵집의 사례를 통해 간단히 설명한다. 이 설명이 딱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저자는 한 가지 중요한 설명을 빼놓는다. 바로 자본의 집적·집중화 현상이다. 이는 다른 말로 자본의 독점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소사업체들끼리의 경쟁을 조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독점자본이 몸집을 더욱 불려나가며 생산규모를 거대하게 발전시킨다. 독점자본의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그 '외부'(사회적 경제론에서는 이른바 '제4섹터'라고 부른다)에서 소사업체로서 윤리적 경영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모델이 될 수 없다. 이를테면 그것은 자본주의 정글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맹수는 가만히 내버려둔 채 "우리끼리 알아서 잘 버티며 살아보세.."라고 읇조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소상인 중심의 '착한 경제'를 자본론의 몇 가지 구절을 따와서 이렇게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법이 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본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한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다.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185쪽.
​그러나 이는 앞에서도 말했던 자본의 독점화 현상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론에 다름 아니다. 물건의 생산은 고도로 사회화되면서 조직적인 체계를 이루고, 따라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의 독점화 현상도 불가피해졌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따라서 그는 고도로 집중화된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자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마르크스의 입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을 맥락과 상관없이 자본론의 한 구절을 뚝 떼내와서 설명하고 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소경영의 기초이며,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다." (『자본론』 1권 7편 24장)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일하는 사람의 개성과 잠재능력이 훈련되는 소상인(소경영)의 가능성은 마르크스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186쪽.​
 
그러나 저자가 인용한 저 구절은 아직 자본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다. 저 구절 다음에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생산수단의 집적과 집중화를 말하고 있으며, 이 발전단계야말로 진정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고 마르크스는 일컫는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이 생산양식(소경영 중심의 경제체제)은 자신을 파괴할 물적 수단을 창출해낸다. (…) 그리하여 이 생산양식은 소멸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실제로 소멸한다. 그것의 소멸,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분산되어 있던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집적된 생산수단으로 전화하고, 따라서 다수에 의한 소규모 소유가 소수에 의한 대규모 소유로 전화하여 결국 대다수 민중에게서 토지와 생활수단과 노동용구가 수탈되는 이 무섭고 고통스러운 민중수탈, 바로 그것이 자본의 전사(前史)를 이루게 된다. 거기에는 일련의 폭력적 방법이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중에서 획기적인 것만을 간추려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방법으로 훑어보았다.
-『자본 1-2』, 1021쪽.
 
마르크스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가 말하는 소경영·소상공인 중심의 경제체제란 이를테면 산업자본주의 이전의 '매뉴팩쳐 시대'에 다름 아니다. 저자의 입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지극히 낭만적이고 반동적인 비판에 불과하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이윤을 착취하지 않는 기업'의 모델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말은 저 '소경영 중심의 경제체제'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인정했다면 그것을 끝까지 밀고나가 독점자본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치달았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생산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노동자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소경영자'로서의 마인드에만 머물러 있어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자투쟁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썩는 경제', '발효 경제'의 경영철학을 자본주의의 '썩지 않는 경제' '이윤 중심의 경제'와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차라리 저자가 솔직하게 '사회적 경제론'에 입각한 설명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자본주의 비판도 하나의 트렌드가 되다보니, 책의 내용은 마르크스주의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마르크스'와 '자본론'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책의 콘셉트를 파는 게 큰 유행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책의 마케터 담당자였다면, 이 책의 콘셉트를 어떻게 정하고 어떤 분야의 시장에 이 책을 소개했을까. 난 아마도 사회적기업˙협동조합 키워드를 살려서 이 책의 콘셉트를 정하고, 마르크스는 곁다리로나 집어넣어서 이 책을 소개했을 거 같다. 그게 콘텐츠 내용에 보다 충실한 마케팅 전략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