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
우르스 비트머 지음, 이노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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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낭만주의적 우울과 몽상이었다면, 아버지는 전근대적 수집벽과 망상증이었다. 그 밑바닥에 비교(秘敎)적 마을공동체의 전통이 있고 그 정점에 아방가르드적이고 카니발리즘적인 축제가 있는 것은 흥미로운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과 20세기 전반기 예술에 관한 목록들의 장황한 나열은 희한하게도 잘도 어울린다.
그러니까 20세기 문학의 뿌리에 전 시대의 패배한 기질들이 있음을 되새기는 일이란 얼마나 적절하고 쓸쓸하고 따뜻한 일인가.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복기하는 일, 즉 '아버지의 책'을 작가의 언어로 복기하는 일이 곧 문학이라는 것은 반박하기 어려운 진실이다.

다른 얘기지만, 그런데 우리는 이런 도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철없는 아버지와 꿈많은 어머니.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러했고, 그러하지 않은가. 아니, 아니다. 생각을 고쳐먹기로 하자. 이건 어디까지나 유럽의 전후 자본주의에 의해 패배한 전시대의 유물들에 대한 기록이 아닌가. 정말이지 이런 역사적인 고증에는 무어라 토를 달기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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