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단테, 신의 나라로 여행을 시작하다 서해클래식 3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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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곡]을 두번 째 읽는 느낌은 아주 색다르다. 첫번 째는 너무 지루한 나머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단테의 상상력만큼은 경이롭고 감탄을 자아나게한다. 인간의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한계가 있을까? 지옥을 다녀온 사람은 대략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단테 정도, 그렇다면 단테도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반열에 올라야한단 말인가? 아니 신학자정도로 보야야할까? [신곡]은 그 모티브가 대략 성경의 내세관과 그리스로마신화의 여행담 정도로 치면 너무 비약적일까? 베길리우스의 안내를 따라 돌아보는 지옥-연옥-천국은 가히 경이롭다. 그 내세관이 기독교적인 내세관을 내세우고 있지만 단테가 천재적이다는 것은 신학적, 역사적, 정치적인 전문성을 겸비해 [신곡]을 서술해 나가는 풍부한 지식에 있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첫번 째 관문은 좀 내세관의 차이에 있겠지만 다소 억울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수가 오기 전, 그리고 예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단지 작품이 고전이라는 인식하에 읽었다는 오류는 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 전체를 아우를 때 다소 배타적이고 객관적인 면들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면에서 단테는 브루터스를 실날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역사는 폭정을 종식시켰다는 의미에서 브루터스를 나쁘게 표현하지 않는 면들도 있다. 그것은 단테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 문제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소 주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가 가지고 있는 정치관이나 세계관을 배제하고서라도 [신곡]은 분명히 사람들을 경악하게할만큼 위대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직접적으로 내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묘사한 작품이 지금까지도 그것을 뛰어넘을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그 방면에서는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유럽사회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다소 협소적인 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대에서는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을 점을 가만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다소 실망스러웠던 한 가지는 그리스로마의 내용이 상당 부분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낼 수 있는 단테의 상상력에서는 깊은 찬사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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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15: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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