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야환담 채월야 1
홍정훈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홍정훈이 그려간 ‘미친 달의 세계를 빠져나오며’

‘월야환담 채월야’를 읽었을 때 맨 먼저 들었던 생각은, ‘역시 홍정훈이구나였다’. 거침없이 써내려간 문장 속에 녹아든 냉소와 야유들. 어찌 보면 거칠고 치기어린 독설로까지 보이는 그 힘은, 홍정훈 작품 속에 일관되게 보이는 숨길 수 없는 끼이다. 그러나 이 소설 ‘월야환담 채월야’를 읽고 그동안 다른 홍정훈의 작품들-가령 ‘비상하는 매’나 ‘더 로그’ 같은-을 접할 때 느꼈던 아쉬움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흡혈귀와 인간 흡혈귀 사냥꾼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최근 몇 년 동안 극장가에서 심심찮게 선보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나 ‘블레이드’ 등과 같은 흡혈귀 영화들을 연상시키면서도 달리 생각해보면 판이하게 다른 게 이 소설 ‘월야환담 채월야’였다.

무엇이 흡사하고, 무엇이 다를까? 이 소설을 얘기하기 위해선 그것을 짚고 넘어가는 게 더 쉬운 접근 방식인 것 같다. 영화와 흡사한 것은 그런 게 아닐까? 흡혈귀를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는 것. 가령, 흡혈귀를 악의 원흉으로 규정짓던 고전소설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있다는 것. 그래서 흡혈귀의 인간적인 면이나 역사를 토대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판타지 특유의 모험과 환상보다는 리얼리즘이 돋보인다는 것.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판타지 마니아이기도 한 나를 사로잡은 이야기의 힘은 분명 기존의 방식과 다른 어떤 것일 텐데... 그걸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을 단지 냉소나 야유라고 말하기엔 미진한 그 무엇이 있는데, 무엇을 향한 냉소와 야유인가를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1,2권을 읽을 때까진.

그러나 3권을 읽었을 땐 달랐다. 그 냉소와 야유는 현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와 풍자였구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인 방황하는 세건, 괴팍한 신부 실베스테르, 냉혈한 알케미니스트 사혁 같은 비정상적인 인간들. 그리고 진마흡혈귀들과 경, 인, 려처럼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진마 흡혈귀 적요의 자손들. 홍정훈의 ‘월야환담 채월야’는 비정한 인간 흡혈귀 사냥꾼들을 통해 물질주의에 물들어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냉소와 야유를 퍼붙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역시 아직까진 치기로 보인다. 속도감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홍정훈의 감각은 돋보이지만, 이 소설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읽어내기엔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는 너무 건조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투장면은 잘 만들어진 게임 정도에 머물게 한다. 이 소설이 더 좋아지기 위해선 흡혈귀 사회를 지칭한 ‘미친 달의 세계’ 을 더 생생하게 그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월야환담의 후속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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