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시선 19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래에 들어서 시집을 선물하는 것에 상당한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생일자가 생긴다던가 후배나 선배를 만날 경우에는 주로 시집을 선물하곤 하는 것이다. 김선우 작가는 우연치 않게 알게 된 신인 작가다. 우연히 만난 선배에게 선물을 하고 또, 후배들에게 괜찮은 작품성을 지닌 신인 작가라고 간간이 소개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요즘 시를 읽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을 가만하면 어쩌면 시집을 선물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을 대상으로 선물을 주로 하는 편이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대관령 옛길]을 읽고 잔잔한 기분을 연출해 낼 수 있는 작가의 심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끔은 우리도 우리들 삶을 터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정초에 다짐하는 생의 애착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이 어쩌면 산행을 하는 것처럼 가파르고 힘겨운 등산과도 같은 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도 갈거니? 아직 그 길로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다. 단 도전한다는 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고통이므로 시도해서 그 고통을 즐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산행도 한결 가벼우리라 생각한다. 다시 야스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구지 언어로 깊이 있게 적랄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의 감각을 충분히 충동질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김선우 작가의 [어라연]이나[엘레지][봄날 오후][점][애무의 저편]등등은 감각적 성의 묘사를 통해 우리의 저편에 있는 신경을 은근하게 자극한다. 물론 그 표현들을 여성성의 세밀한 묘사라든가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것을 구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 여성 작가라고 편견을 가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여성작가가 성적 묘사라든가 이미지를 가지고 글을 썼다고 한다면 그 평은 뻔한 결론을 도출해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성의 묘사를 진술을 남성이 언급했다거나 여성이 언급한 것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편견이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엘레지]-사람의 성적 욕망이나 또는 대자연의 산물이 생성, 소멸하는 것은 어떤 의지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을 우리는 규정하려하고 확인하려는 못된 버릇이 있는 것을 잘 지적한 작품이다. 그러나 의도적인 글쓰기를 읽고 있을 때의 씁쓸함은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분히 나의 편견일까? 이를테면 조루증을 앓고 있는 은행나무라는 표현이나 또는 자위를 해보았느냐라는 질문들은 어떻게 보면 저돌적이고 당돌한 표현이지만 그 표현이 실로 위험하지 않고 단지 돌아서 있는 여성의 나체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전반적인 성적인 묘사들은 나로 하여금 식상하다, 상업적인 언어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같다.

굳이 이것을 편견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분명 편견을 가지고 이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아니 좀더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가는 작품에서 성의 해방이나 여성의 페미니즘 뭐 이런 것 말고, 왠지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서 글을 묶어 놓았다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나만의 편견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아직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젊은 여성 작가의 의도를 얼마나 잘 표현하고 지적했는지 또, 일반적으로 독자들을 현혹하기 위해서 이런 식의 내용을 주로 다루지 않았나? 다소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안에 여성과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