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묘지 외 - 1992년 제6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조정권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남성적 목소리를 내는 시인을 뽑으라면 단연 조정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목소리가 역사적,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되어서 강한 톤을 발성할 수 없었던(과거) 이유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던 그의 시에서는 강함과 부드러움 대자연의 애착이 숨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중성적 아니면 여성적, 소년에 가까운 우리의 시의 경향을 볼 때 색다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시에 많은 관심이 있지 않은 사람이면 그다지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안타까움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어서 조정권 시를 다시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시에서는 천상과 지상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 천상의 세계로 가는 중간자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시인 조정권의 역할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대단히 단호하며 감동적이다. 그리고 대자연의 사물을 끊임없이 관찰함으로써 태초의 자연이 형성되고 죄로부터 구속받는 인간의 굴레를 보는 듯한 두려움과 환희가 각각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 본다.

가장 위대한 정신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고자 하는 도인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그의 시 정신은 마침내 하나의 깊은 심연의 세계를 끝없이 돌고 돌아서 마침내 정신없이 현상을 뛰어 넘고자하는 의욕이 심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높은 정신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정상을 향하는 강렬한 의욕에서 나는 소름 끼칠 듯한 그의 차가운 의지와 다시 한 번 해후하게 되는 것이다. 산정묘지가 주는 이러한 놀랄만한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화자의 욕망이 끊임없이 정상을 향해서 멈추지 않고 더군다나 그 길에서 예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

갈가마귀, 대숲, 얼음의 폭포, 신비에 가득한 원형의 세계, 태초의 세상 속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창조해 가는 미지의 세계를 우리는 바라보는 것이다.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빛을 받들고 있다. - 「山頂墓地1」

어둠에서 밝음을 만들어내고 가장 견고하고 깨끗한 얼음의 이미지에서 가장 높은 정신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시련과 애착이 언제쯤 끝날 것인가? 답은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그는 마냥 높이를 찾아서 가장 순수한 정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고심한다. 깨어 있지 않은 정신은 호되게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다면 안주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 자연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시인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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