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독서 방법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화자와 나와의 감정의 일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책 속의 화자와 나의 감정상의 문제를 보다 친밀하게 이끌어내어서 나 자신이 책 속에 몰입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그렇다면 이란 말을 자주 중얼거린다. [롤리타]를 읽는 동안 험버트와 나와의 동화는 정말 잘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더 도덕적 경제적이란 문제가 항상 걸림돌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책을 읽는 일은 그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다. (유년시절에 죄와 벌을 읽고 항상 꿈속에서 죄책감과 사고를 치고 달아나는 나 자신이 싫을 정도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롤리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놀랄만한 내용은 아닐지 모른다. 그만큼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우리는 암암리에 개방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은 항상 세대의 비난을 피하기가 쉽지 않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까? 세대의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도덕적 그늘에서 편하다. 그러나 세대를 앞서가는 천재는 비난의 화살을 받아왔다. [롤리타]가 그런 작품이 아닐까? 아무튼 험버트의 애정행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파악해보려 노력해보았다. 어릴적 성장 배경, 성인 이후에 정신적 장애, 그리고 비도덕적인 애정에 대해서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이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세계는 위선으로 치장한 얌전한 고양이가 아닐까? 과거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 현재도 그렇지 않은가? 소녀와 성인의 애정 그것이 순수를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일이라도 현재의 사회를 그려내는 일이 문학이 추구해야할 의무이고 미래를 추구해야할 책임이 아닐까? 아무튼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할 만큼의 문제작은 아니었다. 물론 근래에 워낙 험한 신문기사를 접하다 보니 감정이 무뎌진 것도 상당 부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학은 어디까지나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세대를 앞서 간 나보코프에 찬사를 보낸다. [롤리타]는 현재에도 충분히 논란이 될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가 수 없이 읽어왔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신들에 대해서는 왜 그다지 관대한지 신은 용서되고 인간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것일까? 모든 판단의 기준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도 한 번쯤 언급하고 지적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