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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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글러의 양심의 갈채를 보낸다. 아버지는 평생을 농삿일로 인생을 살아가시고 계신다. 한 번도 만족할 만큼의 쌀 값을 받아 보지 못하신 인생 그리고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격을 볼 때마다 난 삶에서 적어도 농수산물만큼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소비하고 있다. 누군가? 이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애덤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다분히 경제적 순기능을 말한 것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은 얼마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조정되는지 깨닫게 된다. 장기적 안목으로 세상을 서서히 착취하고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몰고가는 그들 다국적 기업들의 착취는 집요하고 철저하게 사람들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고 있다. 제도화 되어버린 착취의 도구, 금융시스템의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왜? 선진국이 한 나라를 후원하고 또, 한나라를 지원하는지 그 원이을 알 듯 하다. 에디오피아의 경우를 되짚어 본다. 쿠테타를 지원하고 군비를 팔고 내부의 적을 만들어 대립하게 하는 선진국의 정책들을 보면 차라리 구역질이 난다. 그리고 군비를 끊임없이 팔고,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정책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금리의 5~7배 가까이 받으면서 영원히 돈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리는 정책, 흡혈귀처럼 한 나라의 경제를 송두리째 좌지우지하는 다국적기업들의 횡포를 보면 경제의 순기능에서 찾는 사회적 통합과 전체이익을 대변하는 선한 기업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에디오피아는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인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의 곡물가격을 결정짓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으로 볼 수 있다. 생산자는 매년 턱없이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생산한 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한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이 가공하는 가공품은 한번도 내려간 적이 없다. 아러니컬하게도 세상의 논리와 경제적 논리와는 상반되는 현실이 유독 1차 생산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현재 다국적 기업들을 GMO-즉 유전자 변형식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유전자 변형 식물을 통해서 식량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씨앗을 통해서 농업기반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물론 인체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시 하고 있는 이들은 양심과 인간의 건강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가장 우선히 한다. 

  경제적 가치를 위해서 노조를 탄압하고, 위협하면 직장을 폐쇄하여 새로운 곳으로 진출하여 사업장은 여전히 건재한 가운데 매번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이 나라에서 대물림되는 현상은 해가 지날 수록 감당할 수 없는 이자부담이 나라와 사회와 개인의 삶을 완전히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 몽고나 에디오피아, 동남아의 여러나라들은 식수문제하나 해결하기에도 무기력하다. 매번 환경과 싸워야하고, 그 환경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지어지면 이자의 노예가 되어서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벼랑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세계는 빈부의 격차가 격심해지고 있다. 개인, 사회단체가 나서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그 문제와 반대로 착취를 악랄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식량이 무기가 되고 날씨와 환경에 따라서 계속되는 구제금융을 받아야하며 그 이자부담으로 인해서 삶의 질은 개선되어지지 않고 있다. 개인이 그렇고 나라가 그렇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자원대국이며 식량대국이지만 한편으로 굶주림으로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이 많다. 그 원인은 군부의 정권유지에서 이루어진 이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들의 착취는 흡혈귀처럼 더 악랄해져가고 브라질 국민의 대다수는 빚을 같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하는 것이다.  

  자유무역이 세상을 보다 풍성하게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기업들의 사냥터가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질은 향상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열악해져가고 있다. 깨끗한 물, 비상용 약, 약간의 끼니가 없어서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어디에 있을까? 그 착취는 계속될 것이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무역11위 나라가 금융대란과 경제적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자체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 된지 오래다. 자세히 들어다 보면 우리의 산업 전반에 걸쳐 우리의 경제가 누군가에 의해서 예속되어진 것은 광복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그 돈은 누군가 가져가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말의 뜻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아직도 우린 재주를 부리고 있을 뿐이고, 돈은 안타깝게도 외국인들 이른바 큰손들이 다 챙겨가는 형국이다. 한번 예속되기 시작한 순간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세상은 철저하게 양육강식의 논리만 있을 뿐이다.  

   지구 어느 편에서 누가 굶주려 죽든 누가 더러운 물을 마시다 죽어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세상은 경제적 이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영기업을 민영화 시킬 것을 요구하고, 민영화 된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므로써 기업에서 발생되는 이익을 본국의 본사로 환송시키는 일을 할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후진국을 찾아다니면서 행하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압박을 통해서 자본의 폭력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회유책으로 때로는 무시무시한 압력으로 말이다. 양심보다는 그 뒤에 이리의 탈을 쓴 기업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라든 사회든 개인이든 누구나 누군가에 의해서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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