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김영하)

신간을 잘 사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신문과 잡지의 책 소개란을 읽고 책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내게도 게으름이 찾아왔다. 서점을 한 두시간 기웃거리며 발품을 팔던 수고스러움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다. 장편소설을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과 잡지의 기사에 의존하는 내 정보력. 실력이 아닌 학벌이 먼저이듯, 책 내용이 아니라 작가의 이름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간다. 믿을만한(?) 작가의 책이라면 무조건 신뢰하고 본다. 이문열, 황석영, 신경숙 등 10명 이내의 작가들이 출판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놀라운 독서편향을 극복할 내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잘나가는 장편소설 작가, 방송인, 대학교수. 마흔 전에 대한민국에서 이만하면 출세한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는 위치에 섰을 때, 작가는 홀연히 모든 것을 버리고 해외도피(?)를 선택한다. “나는 강의 시간이면 더 큰 목소리로, 더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내면은 더 쪼그라들었다.” 그렇더라도 혼자 결정하지는 못했으리라. “학교를 그만둬. 방송도 때려치우고. 그해 겨울에 아내가 말했다.” 나도 그런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아내와 우리들의 아내는 이런 말을 하기보다 “쉬고 싶다고? 아, 그렇더라도 기본적인 생계는 책임져야할 것 아니냐. 당신은 당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야! 지금 세상이 어느 때라고, 아직도 철없이. 쯪쯪......”

  작가 김영하가 모든 것을 버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설만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장편 소설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진귀한 경험이었다.” 라고 느낄 때, 나도, 우리도, 진귀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험은 용기를 가진 자에게만 허락된 것. 떠날 여유(돈)라도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 버릴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여유도, 버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란 사치다. “생소한 곳에서 영혼은 비로소 눈을 떠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내려다 본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을 내일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자신을 내려다볼 틈마저 상실한 것이 우리 사회 아닐까?

“나도 모르게 시칠리아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캐나다로 가기 전 무작정 시칠리아도 떠난다. “지도만 보고 작다고 무시했던 섬이었다. 그러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은 바로 나였다.” 라는 깨달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려야 얻는 깨달음! (버릴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깨달음도 없다?) 자꾸 새 것을 사라고 강요만 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나는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무엇을 버려야할까? 

가끔씩, 아주 가끔씩, 20대의 나와 대면하고 싶다. 그때 왜 그런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했느냐고 다그치거나, 그때 참, 힘든 고비를 무던히 잘 넘겼다고 격려해 주고 싶다. 내 안에 꿈틀꿈틀거리는 잃어버린 것들. 그것들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길다. 아니 짧아서 더 잃어버린 것들을 찾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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