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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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김진숙



노보텔 엠베서드 노동조합에서 준비한 5단의 축하케잌을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맥주와 김밥으로 가볍게 허기를 달래며,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관한 그 시절의 이바구들이 주절주절 이어진다. 긴장하지 않고 들어도 되는 이 순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노동자들인가? 악다구니로 세상을 살아가야만 그것이 진정한 노동자의 삶이라고, 물건하나 살 때도 삼성과 대기업 제품에 쉽게 손이 가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들의 행동방식이라고. 그런 긴장감 없이 누군가를 마냥 축하하기위해서 밤을 밝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는, 웃고 떠드는 자리. 김진숙! 그녀 때문에 우리는 또 잠시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반성하게 되었다.

김진숙! 일주일 이상 연설문 작성 준비를 하는 그녀의 연대사는 콕콕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찌르다 못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강연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 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먹먹했다던 선배의 말에 우리는 다시 되묻곤 했었다. ‘우리, 지금, 너무 쉽게 사는 게 아닐까?’ ‘아니, 우리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노동자인 척 하는 게 아닐까?’

거북선을 만든 사람이 이순신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 노동자였다고,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라, 민중이었다고 가르치지 않는 우리 교육은 수정되어야 한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면, 2%의 추가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는 박근혜가 유력한 대통련 후보로 거론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노가다’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불행한 역사의 언어를, 사회를 움직이고, 역사를 진보시키는 언어로 뇌리속에 박힐 때까지 우리는 온몸으로 우리들의 의식을 깨고 또 깨야한다.

그렇다면, 정작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말로 애써 기념회를 평범한 만남의 자리로 대신해 버린 김진숙! 그녀가 바라는 세상을 뭘까? 어디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릴께요. 법이 곧 정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같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 배가 등가죽에 붙어 가면서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더라도 그저 법이 정의이기만 하다면, 그렇다면......” (95년 11월 공판에서)

“해고되고는 싸우느라 바빠서 그랬지만, 그 뒤 어느 때부턴가 더 이상 아프질 않았다. 학번 없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지고부터였을 게다. 그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생기고부터였을 게다. 난 그걸 믿는다. 세상을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투쟁. 그 투쟁에서 당신들은 나의 소중한 동지들이다. 자기소개할 때 학번 넣지 말잔 얘기를 참 길데도 했다. 그쟈?”

김주익이라는 한 노동자가 35M 크레인에서 90여일 넘게 죽음으로 투쟁한 결과, 20년 해고노동자들이 복직되었다. 그러나, 김진숙! 그녀는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녀만은 자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녀는 이제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자본가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가들만 모를 뿐, 우리는 안다. 김진숙, 그녀가 얼마나 사람다운 사람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여자인지. 진짜 노동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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