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섬 웅진 모두의 그림책 41
다비드 칼리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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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바로 우리 눈 앞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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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역사의 이면
조한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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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세계사'라는 제목을 보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결코 소소하지 않은 서사로 내 지적 한계를 깨뜨려주는 맑고 투명한 지식의 샘 같은 책을 만났다는 것을. <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는 역사에서 소외된 민중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핍박받는 민중들은 고된 삶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전력투구했고 끝내는 원하는 것을 쟁취했거나 좌절당했다. 저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어둡고 깊은 우물 속에서 길어올려 우리에게 건네준다. 이 이야기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된다고 말이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핵심 키워드 #법 #전쟁 #정의 #풍자 (p.74~75)


1945년 11월 20일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연합군의 군사법정이 2차대전 전범 24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악의 평범성'으로 널리 알려진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도 포함되어 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 도약의 발판이 된 창당대회가 열린 적이 있었기에, 그것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선정되었다고 한다. 나치를 정죄하는 목적을 가진 이 재판은, 오늘날 그 과정이 공정치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종전 후 승리를 거둔 측이 패배를 한 측에 대해 범죄를 저질렀는지 규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전쟁 범죄와 인간성에 위배되는 범죄를 분류하고 법정을 구성하는 데 있어 유엔에 의해 선례로 받아들여졌고, 게다가 국제형사재판소를 설치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정당성을 입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p.75) 2017년 2월 9일에 쓰여진 이 글을 이렇게 끝을 맺는다. '법리적 판단을 도외시하는 변호인단은 수준 미달이고, 헌법마저 훼손하며 특검을 거부하는 청와대는 정부기관인지 의심스럽다. 제대로 된 그들의 논리가 듣고 싶다. 하지만 있을까?'(p.75)



어떤 과거 청산 - 크반트 가문

핵심 키워드 #염화 #작품 #전쟁 #정의 (p.118~119)


독일의 자동차사 BMW에 투자해 갑부 반열에 오른 크반트 그룹은 나치와 손을 잡고 노동자들을 착취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1차대전 때부터 독일의 군부와 결탁해 부를 쌓았으며 나치 치하에서는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동원해 배터리 제조 회사를 경영했다고 한다. 2007년 독일의 공영방송에서 <크반트카의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그들의 민낯을 낱낱이 밝혀냈다. 이에 크반트 가문의 상속인들은 거금을 기부해 자기 가문의 나치 치하 행적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과거 배터리 공장의 인근에 '강제노동자료 센터'를 설립했다. 참 독일의 과거 행적에 대한 처신을 볼 때면 항상 바다 건너에 있는 '그 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지독히도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



황색 언론 - 조지프 퓰리처

핵심 키워드 #근대 #왜곡 #유래 (p.80~81)


황색 언론이란 판매 부수를 늘릴 목적으로 미확인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를 가리킨다. 과장이 심하고, 스캔들을 파헤치고,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내거는 언론들, 그들을 가리키는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하지만 굳이 쓰지는 않겠다.) 황색 언론은 그릇된 언론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지만 그 역사적 기원은 1895년부터 1898년 사이의 정점에 다다른 <뉴욕 월드>와 <뉴욕 저널>의 경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중 퓰리처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뉴욕 월드>를 존경받는 신문으로 되돌려놓은 뒤 세상을 떠났다. 과연, 우리에게도 '퓰리처'같은 양심이 나타나려나?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 - 알도 마누치오

핵심 키워드 #미술 #작가 #작품 #지도자 #학문 (p.274~275)


르네상스는 찬란한 예술가와 문학가들을 낳은 위대한 시대다.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학예와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는데 기여한 베네치아 출판계의 제왕 알도 마누치오가 없었다면 르네상스가 펼쳐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 문화에 탐닉했던 알도 마누치오는 그리스 고전을 출판하고 그리스를 연구하는 학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라틴어 필사분을 인쇄하고 이탤릭체라는 서체와 세미콜론과 아포스트로피와 같은 구두점도 만들었다고 한다. 이로써 더 많은 책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려고 노력했던 알도 마누치오. 에라스무스, 피코 등의 학자와 이사벨라 데스테, 교황 레오 10세와 같은 정치인까지 마누치오에게 출판을 부탁했다고 하니,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에서 캐낸 사실에 더해 지식인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현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끝을 맺는 글들이 실린 이 책에는 모두 330여 개의 이야기가 날짜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을 총 40개의 키워드로 다시 분류해내 관심있는 주제의 글들을 골라 읽을 수도 있다. 결코 소소하지 않은 소소한 세계사를 통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 일말의 빛을 던져줄 가능성이 보이는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귀한 시간을 가져보았다.




  #조한욱교수의소소한세계사 #소소한세계사 #조한욱 #교유서가 #교유당 #도서리뷰 #서평 #책리뷰 #도서추천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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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역사의 이면
조한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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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몰랐던, 베일에 싸여있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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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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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을 읽는 내내 묘한 기시감에 사로 잡혔다. <오로라의 밤>을 읽을 때엔 옐로나이프의 오로라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내가 기억나는 것 같았고 <매화나무 아래>를 읽을 때엔 언니가 입원한 병원 앞에서 늙은 매화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던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 나는 수없이 많은 '나'를 보게 되었다. 오래된 이야기이자 새로운이야기인, 지나간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다가올 이야기이기도 한, <우리가 쓴 것>. 가끔 나는 이 책을 "내가 쓴 것"이라고 잘못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독이 아니다. <우리가 쓴 것>은 곧 수많은 '나'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써왔고 미래에도 써나갈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젠가 오로라를 보러 가겠다고 생각했다. 멈춰 있는 작은 사진 속 한 장면이 역동적인 세계의 모습으로 내 삶에 깃드는 순간, 그때 또 다른 눈이 떠지겠지. 오래도록 설렜다. 하지만 계속 '언젠가'에 머물렀다. 아직 학생이다가, 돈이 없다가, 아이가 생겼다가, 아이가 어렸다가,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쓴 것> p.198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소원, 계속 '언젠가'에 머물러 있던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캐나다로 떠난 며느리와 시어머니, 그리고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여성에게 강요된 모성애와 그렇지 않은 모성애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내 몸 어딘가에 박혀 있던 가시의 존재를 재차 확인하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그런 고통을 감각하게 될 때면 한숨 짓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정말 방법이 없다. 효경이 손자 한민이를 보기 싫다고 오로라에 소원을 빌 때에도, 아픈 아이를 하루만 봐달라고 부탁하는 딸에게 눈물을 참아가며 "오늘만이야"라고 말할 때에도. 나에게 강요된 것들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결국 눈물이 나고서야 내 마음이 잠잠해졌다. <오로라의 밤>을 읽고 또 읽었다. 오로라를 올려다보던 효경이 '이 순간을 위해 살았구나.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구나.(p.246)' 라며 맑고 개운한 눈물을 흘리던 때처럼 지금 이 세상의 모든 '효경'이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오로라의 밤'에 가닿게 되길 빌어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 위에 풀썩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아예 엉엉 울었다. 어른이 된 후로 내가 이렇게 얼굴을 내놓고 울었던 적이 있었나. 소리 내서 울었던 적이 있었나. 억울함과 서운함, 고통과 후회로 사무친 눈물이 아니라 맑고 개운한 눈물. 몸과 마음 속 모든 낡은 것들이 빠져나갔다. 이 순간을 위해 살았구나.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구나.

<우리가 쓴 것> p.246




"근데 승훈아, 나라면 싫을 것 같아. 아무것도 못하고 저렇게 누워만 있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걸까요?"

(중략)

그럼 나는?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을 날을 향해 걸어가고만 있는 지금의 나는 의미가 있나.

<우리가 쓴 것> p.42




큰 언니 금주, 둘째 언니 은주, 그리고 막내인 주인공의 이름은 동주가 아닌 말녀이다. 말녀는 환갑이 한참 넘어서야 개명신청을 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동주'가 되었다. 오래된 이야기같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 이야기라 낡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개명하고 나서 동주 본인보다 더 벅찬 얼굴로 기뻐해주던 금주 언니가 치매 요양원 입원해 하루씩 늙고 죽어가고 있다. 금주 언니가 지내는 치매 요양원 1층의 창 너머에는 '쫓겨나고 떠밀리다 아무 데나 발을 붙인 늙은 나그네 같은' 매화나무가 서 있다. 매화나무의 하얀 꽃이 지기 전에도, 초록 잎으로 뒤덮였을 때에도 언니를 찾아갔지만 언니는 매번 왜 이제서야 왔냐고 꽃이 지기전에 꼭 오라고 말한다.



이제 알겠다. 금주 언니야, 나도 이제야 알았어.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언니야.

<우리가 쓴 것> p.45




금주언니는 이제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로 삶을 이어나가야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때가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동주는 병원을 나선다. 그리고 그 매화나무 앞에 선다. 오래 살아 낸 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벌레인가 싶었던 겨울눈을 발견한 동주의 눈 앞에서 봄의 광경이 펼쳐진다. 새하얀 꽃들이 늙은 나무를 뒤덮어 흐드러지게 만개할 벅찬 광경이, 이내 함박눈처럼 흩날릴 그 꽃잎들이. '꽃이 지기전에 꼭 다시 오라'던 금주언니의 말을 떠올리며 꽃이 눈이고 눈이 꽃임을,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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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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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버닝썬 사건 등 IT기술의 발전에 기생해 진화해온 성범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응분의 죗값을 치르지 않는 성범죄자들을 보며, 과연 법이 이런 범죄를 막고자하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부터 수많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음란물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은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 사건은 또 어떤가. 날로 진화하는 성범죄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아빠진 관련 법들, 솜방망이처벌 등이 이런 성범죄를 조장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법규 제정과 함께 수사 인력의 질적, 양적 확충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이런 제도적 개선은 사후적 해결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도는 성범죄의 진화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시각의 폭력에 물든 이 사회에서 사후적 대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각의 폭력과 이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는다.



디지털 성폭력의 기저에는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져내려온 시각중심의 철학적 전통이 깔려 있다. 여성을 포함한 타인과 소수자를 시각적으로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이성'에 근거해 이것이 여성혐오 등과 결합해 관음증의 폭발이라는 광기로 이어지는지를 짚어나간다.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의 제1장 <성적이상>에서 관음증과 노출증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보는 즐거움이 성 목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노출증 환자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예전 한국의 여중 여고 앞에 출몰하곤 했던 '바바리맨'들의 노출증적 도착은 '나의 것을 보여주었으니 너의 성기도 보여다오'식의 호혜적 '봄'의 관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각종 SNS를 통해 과식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노출하고, 이를 절시증적 욕망을 가진 불특정 다수가 보고 소비하며 '좋아요'를 눌러주는 현상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각의 폭력>


많은 이들이 SNS로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나의 일상을 노출한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일상을 공유하는 요즘, 어쩌면 언제라도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타자와 주체가 연루됨을 거부한 채 은밀하고 탐욕스럽게 타자를 지배 통제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한계를 넘어서 여성을 비록한 타자, 자연과 생명에 공감하고 공존하려는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관음증적 시각이 아닌 촉각과 통감각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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