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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1 ㅣ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평점 :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아날로그적 인간이다. 바꿔 말하면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한 인터넷 대국인 우리나라가 가진 최대 강점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고 해야 하나. 책에 관해선 그렇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여전히 손목을 혹사해가며 책의 무게를 견디고, 손으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수고로움을 즐긴다. 책이 가진 물성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래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웹소설은 나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같은 존재였다. 독서란 자고로 손끝으로 사각거리는 종이의 질감을 느껴가며 읽어야 한다,라는 확고한 고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웹소설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 단행본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이 너무나 반가웠다. 드디어 내가 토털 2억 뷰에 빛나는 웹소설의 전설 <전지적 독자 시점> 소설을 영접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탄생부터 흥미롭다. 믿을 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인 '싱숑'은 '싱'과 '숑'이라는 두 필명을 붙인 것으로 두 사람은 부부라고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각각 파트를 분할하여 쓴 소설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래 생각한 문장을 다른 한 사람이 지우기도 하고, 한 사람이 부러 비워둔 자리에 다른 한 사람이 무언가를 적'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영역의 분할 없이 함께 쓰고 함께 퇴고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소설의 주인공은 '김독자'이다. 혼자서도 강한 남자가 되라고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그는 그저 평범하고 외로운 독신 남성으로, 곧 계약 해지를 앞둔 계약직 직원이다. 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지하철을 타고 퇴근길에 올라 평소처럼 좋아하는 웹소설을 읽고 있었고 우연히 회사 동료 유상아를 만난다. 갑자기 '끼이이이익!' 큰 굉음을 내며 지하철이 흔들렸다. 열차가 완전히 멈춘 뒤,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8612 행성계의 무료 서비스가 종료됐습니다.]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됐습니다.]
주인공 김독자의 머릿속에 그가 즐겨 읽던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도깨비다. 놈이 처음 나타난 순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p.31)' 이어 사람들 앞에 진짜 도깨비가 나타났고,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라는 미션을 준다. 해당 시나리오 실패시 지불해야할 대가는 자신의 목숨이었다. 이전 현실 속에서 주변부 인물에 불과하던 김독자의 인생은 멸살법이 현실이 되자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는 멸살법의 결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장면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았다. 실재를 의심하는 <매트릭스> 속 네오라도 된 것처럼. 관찰하고, 의심하고, 결국에는 납득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었다.
멸실법은 현실이 되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41
<전지적 독자 시점>은 탄탄한 세계관을 자랑한다. 김독자를 비롯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은 제 8612 행성으로 지금까지 무료 서비스중이었다. 즉,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일이 없었다. 무료 서비스가 종료된 후 모든 인간은 도깨비가 제공하는 메인 시나리오의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며 그 과정은 생중계된다. 멸살법의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들이자 모든 이야기를 관람하는 비극의 배후인 '성좌'는 원하는 채널에 접속해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하는 인간에 코인으로 후원을 하거나 배후 후원자가 되어주기도 하며 반대로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주인공 김독자는 본래 해당 웹소설을 즐겨 보던 독자로 원 주인공은 '유중혁'이다. 웹소설 속으로 난입한 독자의 플레이에 따라 세계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전지적 독자 시점> 소설 1편을 펼치자마자 독파했다. 약 300만 자에 달하는 장대한 이야기에 발을 담궜다. 결말을 알게 되기까지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