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무쌍 황진
김동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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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시간이란 전장 속에서 펼쳐지는 끊없는 '기억의 전쟁'이다. 한편에선 잊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선 기억하기 위해서 처절하고 집요하게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시간은 원래 망각의 편인지라,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 속에 누구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면 잊히기를 바라는 쪽이 결국에는 승리하고야 만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임진무쌍 황진> 작가의 말 중에서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로 일제강점기의 의열단원 김상옥과 황옥을 잊힌 역사에서 꺼내 되살려냈던 작가 김동진이 이번엔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의 뜨거운 삶을 우리 앞에 되살려냈다. 임진무쌍 황진은 철저하게 잊힌 영웅일지도 모른다. 웅치와 이리, 진주성 등 임진왜란 초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지만 황진은 '역사'라는 전장 속 '기억의 전쟁'에서 완전히 참패했다. 당시 대부분의 장수들이 자신의 공을 조금이라도 부풀려서 조정에 알리려 안간힘을 쓴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눈부신 활약으로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이라고 칭송받았던 당시 조선 최고의 무장 황진은 1593년 6월 28일 시체 사이에 숨어 있던 지독한 조총 저격병의 총에 맞아 눈을 감았고 역사의 풍화작용 속에 흔적도 없이 스러져버리고 말았다.



 현재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초라한 황진의 묘를 보니 가슴이 더 아파왔다. 황진이 타던 말이 주인을 잃고 묘 앞에서 슬피 울며 머뭇거렸다는데 아마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영웅의 뒤안길이 이렇게나 쓸쓸하고 허무하다니, 오래도록 황진의 묘 사진에서 눈을 거둘 수가 없었다. 



<임진무쌍 황진>은 1590년 2월 초 황진이 통신사의 호위무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때부터 진주성 2차 전투까지 약 3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의 이야기가 담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하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무성해지자 당시 조선의 임금 선조는 도요토미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통신사를 결국 보내기로 결정하고 황진은 황윤길의 호위무사로 통신사에 파견된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도 당시 관료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 싸움에 여념이 없었고 선조는 동인과 서인 세력 모두를 한배에 태워 파견보내는데 이것이 훗날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가져왔다.



서인 세력인 김성일은 외교적 의례를 중시해 사사건건 일본 측의 결례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일본 방문의 목적도 잊은 채 방 안에서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천하의 이치와 예를 모르는 오랑캐'라 폄하하며 그들의 눈부시게 발달한 문물과 신식 무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함께 파견되었던 동인 세력인 황윤길이 "도요토미는 사납고 탐욕이 강한 자로 강한 군세를 내세워 외국을 노리는 자"라며 "머지 않아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고 일본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조곤조곤 설명한 것과 달리 김성일은 "그런 정황은 발견하지 못하였다"면서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하니 도리에 어긋난다" 고 반대로 보고했다. 이로써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대비할 마지막 기회를 날린 셈이다. 



1592년 4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 1만 8000여 명이 통신사의 이동 경로를 그대로 거슬러 올라 조선을 침략했고 첫번째 웅치전투에서 이광이 이끄는 조선군은 5만 명이라는 압도적인 병력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조선의 숭문천무 관념에 사로잡힌 문관 출신의 지휘부가 짜는 작전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고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이러한 난세에 조선 최고의 무예 실력과 천재적인 계략가 황진이 눈부신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패배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전투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하나씩 쟁취해나갔던 황진, 그는 최고의 무예 실력을 용맹한 전사였지만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 두려움에 무기를 팽개치고 도망가는 병사들의 목을 치는 대신 그들의 방패가 되어 싸워주고 대신 적의 목을 베는 리더였다. 흙과 돌을 들고 성곽을 보수하는 일에도 함께 했고 병사들의 만류에도 그들보다 더 앞에서 활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웅치, 안덕원, 죽주산성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두고 모든 이가 패할 것이라 아무도 자원하지 않던 진주성 전투에서 외롭고도 치열하게 싸워 9일을 버텼다. 시체 더미에 숨어 있던 일본 조총 저격병의 총에 저격당해 황진 장군의 목숨이 스러진 대목에서는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분하다, 임진무쌍 황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런 그가 잊혀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료 속에 흩어져 죽은 듯 잠자고 있던 황진 장군에게 호흡을 불어 넣어주고 다시 살려내어 우리에게 데려왔다.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어서 영화, 드라마로 황진 장군을 곧 만날 수 있게 되길, 그보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황진의 용감무쌍한 이야기가 가닿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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