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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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버닝썬 사건 등 IT기술의 발전에 기생해 진화해온 성범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응분의 죗값을 치르지 않는 성범죄자들을 보며, 과연 법이 이런 범죄를 막고자하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부터 수많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음란물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은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 사건은 또 어떤가. 날로 진화하는 성범죄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아빠진 관련 법들, 솜방망이처벌 등이 이런 성범죄를 조장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법규 제정과 함께 수사 인력의 질적, 양적 확충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이런 제도적 개선은 사후적 해결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도는 성범죄의 진화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시각의 폭력에 물든 이 사회에서 사후적 대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각의 폭력과 이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는다.



디지털 성폭력의 기저에는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져내려온 시각중심의 철학적 전통이 깔려 있다. 여성을 포함한 타인과 소수자를 시각적으로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이성'에 근거해 이것이 여성혐오 등과 결합해 관음증의 폭발이라는 광기로 이어지는지를 짚어나간다.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의 제1장 <성적이상>에서 관음증과 노출증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보는 즐거움이 성 목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노출증 환자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예전 한국의 여중 여고 앞에 출몰하곤 했던 '바바리맨'들의 노출증적 도착은 '나의 것을 보여주었으니 너의 성기도 보여다오'식의 호혜적 '봄'의 관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각종 SNS를 통해 과식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노출하고, 이를 절시증적 욕망을 가진 불특정 다수가 보고 소비하며 '좋아요'를 눌러주는 현상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각의 폭력>


많은 이들이 SNS로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나의 일상을 노출한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일상을 공유하는 요즘, 어쩌면 언제라도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타자와 주체가 연루됨을 거부한 채 은밀하고 탐욕스럽게 타자를 지배 통제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한계를 넘어서 여성을 비록한 타자, 자연과 생명에 공감하고 공존하려는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관음증적 시각이 아닌 촉각과 통감각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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