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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 애매하게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돈'립생활 이야기
신민주 지음 / 디귿 / 2021년 4월
평점 :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싱글인 셀럽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를 참 좋아했다. 옥탑방이나 원룸에서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 혼자 밥을 해 먹고, 티비를 보거나 여가 생활을 즐기다 친구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는. 그런데 언제부턴가 몇 십억대의 초호화 빌라나 몇 층짜리 단독주택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나오기 시작했다. 월 2백만원을 버는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200년동안 저축해야 살 수 있는 빌라에 몇 천만원은 우스운 소파까지. 저 정도면 프로그램명을 <나 혼자 럭셔리하게 산다> 로 바뀌어야하는 거 아니냐고 같이 시청하던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 뒤로 그 프로그램을 굳이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젊은 층들 중에 저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씁쓸해졌다.
'혼자'라는 개념이나 방식은 꽤 다양하기에 무엇이라 정의하긴 어렵지만 부유한 '혼자'나 그렇지 못한 '혼자' 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애매하게' 가난한 '혼자'들도 있다. 그런 '혼자'들과 기본 소득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에세이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소개한다!:) "매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다."라고. 나와 친구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퍽 좋아했다. 매년 500파운드의 돈이 있어야 돈 걱정 없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기본소득을 쉽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p.21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집을 사기에는 좀 가난하지만 그렇다고 거처를 정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것은 아닌, 정말이지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방이란 어떤 개념일까? 제인 오스틴이나 샬럿 브런테는 버지니아 울프가 역설했던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은 가족 구성원들의 방해 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일테지만 말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말 그대로 원룸 형태로 된 집인 방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현관문과 벽 등으로 공간은 구분되어 있지만 독립된 집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방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매달 연금 형식으로 받았던 500파운드의 유산은 기본소득에 대입해볼 수 있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이고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현금 소득이라고 한다. 어떠한 조건이나 심사 없이 지급되며 기여도나 자격 심사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매달 일정한 금액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우리는 좀 더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회사에 퇴직서를 날리고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가 아닌 오롯이 나 스스로가 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 만약 500파운드의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면 방이 아닌 좀 더 집답게 구색이 갖추어진 공간을 쓸 수 있을까? 더 나은 삶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개인들은 여러 이유로 다양한 가족 관계와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어느 하나 딱 맞는 것은 없지만,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답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 바깥의 결정을 내린 이들은 언제나 사회의 보편에서 떨어져 나와 겪게 되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는 듯했다. 정상 궤도 바깥에서 한 걸음 옮겨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다가 정상 궤도에 재진입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아쉽지만, 이미 이탈한 사람이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것은 갑자기 지구가 태양계 바깥으로 질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p.87
20대 후반이 되면 취업을 하고, 30대 초반이 되면 결혼을 해 아기를 낳고, 30대 중반에는 일을 그만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그 누가 설명해준 적이 없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시간표대로 살아왔다. 타인이 말하는, 평균적인 정상 궤도로 삶을 살아온 것을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왜 이걸 개인의 운에 맡겨야 할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상 궤도와 비정상 궤도 그리고 그 궤도에 오르는 것이 개인의 의지로 오른 것이 아닐 때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많은 문제들은 누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가. 그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문제를 돌릴 수 있을까? 기본소득이 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의 행복과 희망이 되어줄 순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