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사회, 대안은 지역이다
학술단체협의회 기획, 조돈문.배성인.장진호 엮음 / 메이데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위기의 한국사회, 대안은 지역이다>에는 1부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퇴행에 여덟 개 논문이 있고, 2부 아래로부터의 대안과 실험에 열 개 논문이 있다. 이 책의 서술은 한마디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는 지극히 학술적인 스타일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학단협의 토론회와 사회참여 행동은 척박한 한국사회의 진보의 아성 같은 포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2010년대의 학단협이 퇴물 취급을 받을 일은 없다. 이 책 <위기의 한국사회, 대안은 지역이다>를 읽어보면 이념과 문화의 시대를 거쳐 신자유주의 시대에 왜 여전히 학단협이 의미 있는 정치 행위를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한 권의 책 속에 무려 18개 논문이 들어 있으니 논문 하나하나를 읽어갈 때마다 엄청난 지적인 축적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 중에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이 지경에 이른 ‘한국사회가 대체 왜 무너지지 않는가’ 하는 거였다. 책장을 다 넘길 때까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얻은 성찰이 하나 있다면, 한국은 엉성한 듯하지만, 견고하기 이를 데 없으므로 대안은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책은 5.18 항쟁 30주년을 맞아 기획된 학단협 심포지엄 발표문을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미완의 민주화와 2MB정권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면에서 다룬다. 2MB정권의 전유물인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담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한국사회를 얼마만큼 ‘퇴행’의 악화일로를 걷게 만드는지 세밀히 들춰낸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듯 무법천지가 된 민주주의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놀랄만한 통계수치로 재현된 금융종속과 양극화에 입이 떡 벌어진다.

모든 글이 다 의미 있지만, 특히 재밌던 글은 오동석의 법질서 측면에서 본 민주주의의 위기다. 말 바꾸기의 달인 2MB를 한국어 훼손죄로 다루는 단상에서 시작한 이 글은 다양한 민주주의 실종신고를 보여주며 인권이 곧 혁명권이라고 말한다. 놀랍지 않은가? 인권이 혁명권이다!

5.18의 여러 가지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정태석의 글(5.18항쟁과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도 지역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해주었다.

김정주의 글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축적체제의 역사적 이행과 경제성장의 재인식은 1인 1표의 원리가 아니라 ‘1원 1표’가 행사되는 한국이 ‘자본가 국가화’되었다고 규정한다. ‘자본가 국가’ 한국이라, 웬만한 운동권들도 못 쓰는 용어를 선생님께서 쓰고 계시다!

안현효와 류동민의 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전개와 이론적 대안에 관한 검토도 말 그대로 이론적 검토로서 볼만한데, 80년대 사구체논쟁에 대한 평가와 재등장하는 거시담론시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6개 론에 대한 비교 검토가 재밌다.

제목으로만 보면 1부에 비해 2부가 더 관심 가고 재밌을 거 같은데, 기대만 못하다. 2부는 아래로부터의 대안과 실험이므로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쓴 경우가 많은데도, 1부와 같은 새로운 접근이나 솔직한 고백으로서 실험의 난관 등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일까?

표제 글인 서영표의 21세기 사회주의전략, 급진민주주의+녹색사회주의나 이정필의 글 녹색성장에서 녹색복지로의 패러다임 전환 모색은 녹색정치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의미 있지만, 그리 새롭지는 않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왜 기왕의 생태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멀리하는 것일까? 오염된 용어와 결별한 이유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강현수의 권리와 정의 담론으로 조직된 지역주체에서는 대안 담론+정책+세력이 대안을 가능하게 한다며, 권리와 정의를 강조한다. 인도의 케랄라 사례와 같은 주민직접참여 분권화모델은 우리를 자극하는 바가 크다.

장원봉(협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으로서 사회적 경제), 정원각(경제운동으로서 유럽 협동조합의 사례와 한국 생협의 방향), 현정길(노동자생협운동의 의의와 실천방향), 백일(한국형 자주관리 지역발전 연구: 버스 협동조합 자주관리 사례를 중심으로)은 모두 협동조합운동을 소재삼고 있다. 심화되는 생태위기와 노동조합운동의 정체를 공동체운동 속에서 풀어가려는 시도들이다.

이들의 글은 한편으로 생태와 노동과 공동체의 결합이 반자본주의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반면, 자주관리에서 볼 수 있듯 노동자의 자기통치 원리를 논하면서도 평의회와 같은 노동자의 정치가 제한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쉽다.

김혜진(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과 지역운동)과 정경섭(아래로부터 진보의 재구성, ‘민중의 집’)은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노동에만 머무르지 말고 사회의 진보를 재구성하는 주체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역 조직화가 시동이 더디 걸리고 있다면 민중의 집은 추진력만 있다면 확장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들의 글과 어울린 배성인(예술과 철강의 조우, 새로운 지역운동모델로서의 문래동)의 글은 스쾃 또는 레지던시 등으로 알려진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작업이 지역사회에서 삶과 예술을 버무리는 대안운동으로 자리할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위기의 한국사회에 대한 대안은 지역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퇴행의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추려면 아래로부터 다양한 대안이 실험되어야 한다. 녹색사회주의 실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자 자주관리, 문래동 철강공작소, 민중의 집말고도 여러 다양한 실험들이 있을 것이다. 교육과 의료가 미디어와 공동체가 지역과 접속하는 실천들,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민들의 주체적 운동과 공동체운동 등. 이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실험들은 우리가 찾아내 드러내야 할 몫이다.

안현효와 류동민에 따르면 진보주의는 기존 시장-국가 대립을 ‘시장-사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대안적 질서를 세우려면 노동, 공동체, 공유, 공공성, 생태, 통합, 참여, 연대의 가치에 터해 있는 새로운 주체가 지역사회 아래로부터 형성되어야 한다. 이 책의 결론과 같은 말일 터다.

오동석의 말대로 헌법규범이 실종선고 당한 한국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시민인 ‘인민’의 권리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그리하여 혁명권을 외쳐도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인권의 숙명이 실현되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 답에 근접하기 위해 <위기의 한국사회, 대안은 지역이다>는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이광일 지음 / 메이데이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는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역사와 위상을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한 책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을 썼던 이광일의 새 책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좌파는…>의 전사(前史)격일 텐데 무려 3년이나 뒤에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 저자도 박정희의 “인간적 그림자”를 벗어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일까? 이즈음에서 박정희체제를 연구한 학자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 데야 보통사람들이야 오죽하겠나 싶다. 그렇다. 우리는 박정희를 벗어나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보냈어야 했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는 무슨 망령 같다. 잊힐만하면 튀어나와 늘 현재적 쟁점이 되곤 한다. 경제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대선주자 박근혜 때문도 아니다. 저자 이광일은 YS-DJ는 물론 노무현까지도 박정희체제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 왜? 그들이 자유주의적 이분법의 발상을 뛰어넘지 못한 채 “또 다른 독재”로 박정희체제를 유지 온존시켰기 때문이다. 도발적이지 않은가? MB 하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고 있는 지금, 그 10년이 ‘또 다른 독재’였다고 하니 말이다.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억압”을 분리시켜 사고할 때 자유주의적 이분법의 유혹은 악마의 키스처럼 강렬하다. 어떻게 이 둘을 갈라놓고 박정희체제에 대해 논할 수 있으며, 어떻게 민주주의의 문제를 사회구성체 외부에 있는 어떤 것으로 떼어놓고 인식할 수 있을까? 저자는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기존 논의구도가 자유주의적 이분법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최근 대중독재 류의 ‘막대 구부리기’ 논의구도 또한 자유주의적 이분법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노동에 대한 착취와 수탈 없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지탱될 수 있겠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모순과 갈등을 비켜서 존재하는 성장 일반이나 발전 일반은 결코 없다. 이데올로기 비판! <좌파는…>에서부터 지속돼온 이광일의 일관된 문제의식과 예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를 읽으며 4.27재보선 이후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덤으로 얻는 효과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랑시에르를 전유하며 서동진이나 심광현에게도 귀 기울이는 이광일이 다음에는 또 어떤 이데올로기 비판 거리를 가지고 다가올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로에 선 일본 - 민주당 정권, 신자유주의인가? 신복지국가인가?
와타나베 오사무 외 지음, 이유철 옮김 / 메이데이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정치 지형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그들은 왜 신자유주의를 못 벗어나고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