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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홀로코스트 - 개정판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어째서 히틀러는 유대인을 대학살하는 반인륜적인
비극같은 만행을 저지른 것인가.
전쟁, 발명, 혁명, 학살, 비극..
격동의 시대, 잔혹하다면 잔혹하고 또한 화려하다면 화려했던
20세기가 역사의 뒤로 사라지면서 그동안 시대라는 장막속에
묻혀졌던 당시 사건들이 하나, 둘 재조명 되고 있다.
20세기 전반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가 등장하기 전에서부터
수많은 반유대주의 단체들이 판을 쳤었다고 한다.
이는 독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럽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에 대한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가사를 담고 있는
노랫말도 유행했었고, 윗선에서도 유대인들을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반유대주의 감정이 극을 달했었다.
당시 독일은 제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해 경제와 정치적으로
모두 붕괴된 상태였다. 국민들은 전쟁배상금이라는 명목으로
큰 빚을 자게 되었으며, 무능한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하루하루 먹고 살기 어려워지자,
결국 전쟁의 여파를 가까스로 피해 막대한 이익을 본 유대인들에게
분노가 돌아간 것이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전쟁광, 미치광이로 통하는 '아돌프 히틀러'.
정계에 새롭게 등장한 히틀러는 당시의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자신의 사상에 적절히 이용했고, 역시나 독일인들의 반응은
과연 폭발적이었다. 비단 열등감에 빠진 실업자들뿐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지식인층 마저도 일제히 묘사했다.
히틀러의 유대인증오적인 연설에 대한 독일인들의 맹목적인
찬양에 대해서 보면 알 수 있듯, 나치즘의 등장은 결국 처음부터
필연적인 셈이 된다. 대다수의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소수의
인권이 유보 된다는 히틀러의 그 무시무시한 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료된 것은 과연 분위기 때문만이었을까?
애국심.. 그런 차상위적 차원이 아니라, 독일사회의 전반을 이루고 있는
국민들. 그들에 의해 유린 당한 유대인의 인권의 무게보다 얻는게
더 많았고,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오랫동안 굶주렸던데다
유대인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게 때문에 지도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유대인탄압에 어느정도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고 본다.
그러한 맥락으로 봤을 때, 당시 벌어졌던 극악무도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나치정권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목숨 저울질' 그것이 비록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악과 정의의 관계가 모호했던 당시의 독일의 시대상으로 본다면
홀로코스트를 비단 나치와 히틀러의 책임으로만 전가시키기에는
어딘가 약간 부족하지 않나 싶다.
비록 홀로코스트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이 독일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더라도, 또한 히틀러가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저질렀을지라도 그의 뒤에는 결국 독일인들의 '보이지 않는 손' 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홀로코스트를 단순히 '나치'의 문제로 국한시키기에는 사건이
너무나 깊고 무겁다. 홀로코스트는 개인과 개인, 단체와 군중끼리의
문제가 아닌 독일이라는 국가 차원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20세기 최악의 사건인 홀로코스트. 그 극악무도한 사건 하나만을
강조하거나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지우려고만 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에서의 독일의 유죄를 모호하게 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물론 역사적으로 홀로코스트에 못지 않은 학살사건은 많았다.
그 중에서 홀로코스트가 주목 받는 이유는
전쟁기간 중, 짧은 시간안에, 국가적으로, 최신 병기를 사용하여
수백만의 유대인들을 학살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살당한 유대인의 숫자는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의
대부분인 600백만명이라고 한다. 물론 조작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어찌되었던 수백만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사살된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중국이나 로마에서 일어난 다른 학살사건에 비춰서 감추려고 해서는
안될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제적 행동을 보면서 그들을
비난, 비판할지언정 매도하거나 홀로코스트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결코 안된다.
독일은 이 반인륜적이고 악질적인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책임의식을 잃지 말아야하며 그에 대핸 속죄의 시간과 봉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