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적나라한 민.낯. - 야동 끊은 한 남자의 진솔한 고백
허상 지음 / 에테르니(AETERNI)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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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친구와 버스에 올라탔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맨 뒷자리에서 또래 남자애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의 내용은 서로에 대한 안부나 소개, 일상 이야기가 아니었다.

“예쁘냐?”
“난 걔가 이쁘더라.”
“순위를 매기면….”

그렇다. 그 아이들은 과 여학생(나를 포함해)들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앞이 아니라 우릴 알아보지는 못한 듯 자신들의 얘기에 열중해 있었다.

친구와 나는 아주 불쾌했었다.
“할 얘기가 저것뿐인가?

허상 작가의 <내남자의 적나라한 민.낯.>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그 남학생들과는 친해졌고, 대학 생활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친구도 있고,
아닌 친구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소꿉친구였고 1학년도 같이 보낸 남자 친구와 술래잡기 하다 껴안았을 때
주변 아이들의 반응(얼레리 꼴레리 좋아한대요~노래와 함께)으로 인한 문화적 충격에 이어,
두 번째 문화적 충격이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남자들의 마음? 여자와는 다른 남자의 심리? 그런 걸 느낀 시기였다.

우리집 남자와 생활한 지 10년째.
둘로 시작했지만 넷이 된 나날들.

10년의 세월을 살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겠지만, 아직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 역시 나에 대해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을 것이다.
서로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른 배우자와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다른 게 당연하지만, 특히 남자와 여자를 다르다는 점이다.

생활하며 나와 우리집 남자의 ‘다름’을 알고, 내 나름대로 만든 가이드라인은 요 정도이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상대도 받고 싶어 한다. (마음이든, 도움이든, 선물(^^)이든)
내가 받고 싶은 만큼 상대에게 해 주면 나도 그도 좋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초코파이가 외친 ‘정’은 없다. 말해야 상대에게 전해진다.
의사표현은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한다. 범위를 정해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집 남자를 모른다. 어느 부분 알고 있다 정도?
(내가 이렇게 공들이고 알려하는 걸 그를 알고 있을까도 살짝 의문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더욱 남자에 대해 알고 싶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성범죄가 범람하고,
남녀의 아름다운 연애시절에서 데이트 폭력이나 리벤지 포르노가 등장한 이 시점에서
더 그랬다. (청소년 소설 <나쁜 연애, 썸>을 읽은 영향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사랑, 연애)을 원하는 어린 아이들이 SNS로 성범죄에 노출되는 사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본래 동물이지만, 동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해졌다.


작가 허상은
남성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통해 여성이 스스로 위기 상황에 대해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미투 운동, 여혐, 남혐 등 중도 없이 극과 극으로 성이 대립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성 대립에 있어 남자의 본질적인 이해가 없이 문제에 접근하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도 한다.

남자들은 왜 그래?
남자들은 언제부터 그래?
남자들은 다 그래?

영화를 보다, TV와 신문을 보다, 궁금한 것을 우리집 남자에게 묻는 나처럼
허상이라는 남성이, 남성과 남성의 성, 행동패턴이 궁금한 여성들의 질문에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책이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으로 책 안에서 다양한 시도도 한다.
르포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성에 관한 남성들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수필을 통해 동물의 종족본식본능만이 아닌
인간의 연결되고픈 욕구 에로티시즘을 이야기 한다.

p128
아이는, 자신과 어머니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인 양 어머니의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바로 이 지점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단편소설을 통해 연애할 때(특히 첫 연애 시기의)
남성의 심리와 행동, 남성과 여성의 다름에 대해 심도 있게 묘사한다.

p182
나는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 인거야?”
“다른 사람들이요?”
“이를 테면, 나든 누구든.”
“아, 뭐 되도록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뭔가를 바란다거나 누군가를 평가하려 든다거나 하진 않거든요.
그게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그리고 여자들과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남성성도 언급한다.

p93
일방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여러 방면에서 잘해가는 남성.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책 단지 자신의 남성성은 사는 남성.
타인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줄 알며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성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남자들의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는 제시한다.
1. 남자들의 속마음을 알아 볼 수 있는 관찰력 (남자보는 눈과 대화의 기술)
2. 남자들의 성에 관한 얘기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촉 (날카로운 감)
3. 내가 만나고 함께 하고 싶은 남자에 대한 정확한 상

하지만 이건 위기 상황에 대한 예방일 뿐이다.
작가도 언급했듯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남자들이 있다.
그들과 위기 상황 속에 놓여진 여성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은 아쉽게도 없다.

여성들이 알아서 조심하고,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탈출하는 게 아닌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하는
남성들 스스로의 자제, 자정능력까지 나왔으면 좋았을 거 같다.
이건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읽어야 하는 책이니 말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부모의 안정적인 관계와 가정환경,
가정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걸 책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딸 가진 엄마에겐 내 아이가 나쁜 남자가 아닌 좋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 지혜를.
아들 가진 엄마에겐 남성, 여성을 떠난 공생가능한 사람으로 성장시킬 팁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더 많은 남성과 여성이 공생의 길을 걷도록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길 시도한 작가의 용감한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P111
나 역시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간의 이상적인 관계 및 서로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에 관하여 완전한 해답을 찾았다거나 대단히 특별한 단서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던히,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과 여성의 화해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나에게도, 이 사회에게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발을 뗀 그의 뒤로
나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어지리라 믿는다.

나는 알고 그를 알고, 그는 나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욕망인 연결
아름다운 연결로 이어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p.s.
언젠가 나올
여성 작가의 내 여자의 적나라한 민.낯.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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