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비슷한 내용의 소설과 영화를 여러개 보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몇해 전 읽었던 '바디 The body'와도 비슷한 주제였다. 단지 SF적 요소의 강약 차이다. 인체 장기를 병들 때 마다 교체하거나 아니면 쇼윈도에 전시된 새로운 body를 선택해서 자신의 두뇌만을 옮기거나.. 장기 이식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기다. 자신의 복제인간-클론의 생성도, 아마도 머지 않아 가능하리라.


잠깐 생각해 본다. 먼 훗날 소수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 지금 보다 더 많은 권리를 박탈하지 않을까? 지금도 우리는 단지 먹고, 자고, 입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바로 옆의 이웃들을 착취하고 동물들을 학대한다. 그런데 생명 연장의 욕구가 해소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될까? 


'클론에게도 인권은 있는가'라는 새로운 윤리 규범은 생각 할 필요없다. 지금 여기, 우리의 생존 댓가로 희생되는 동물들의 권리가 유린된다면, 그들은 말 할 필요가 없으리라. 인간 손을 거치지 않은 신의 영역 피조물도 가볍게 무시되는 현실에서 동물 공장과 인간 공장의 생산물은 그저 상품에 불과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과 클론의 경계는 애매모호하다. 소설에서 잠깐 비쳤듯이 클론에게 영혼이 있는 것이 증명되어 기본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면 로봇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체 공학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클론과 동일한 수준의 영혼이 로봇에서 발견된다면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로봇에게도 보장해야 할까? 


너무 멀리 나간 것 같다. 성장기의 우정, 사랑, 슬픔 등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런 우울한 생각은 어울리지 않는다. 또 한편, 나의 저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생명 연장의 욕구를 부정하지 못하며 가볍게 한숨 쉰다. 이건 단지 이기적 유전자의 농간이라고 핑계대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뻔뻔하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여기서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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