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유토피아
김영종 지음, 김용철 그림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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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겐 유토피아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꿈, 이상, 비전이 가장 많이 들리고 보이는 단어였다. 그리고 가장 자주 말하는 단어였다. 꿈이 없는 청소년은 나사 빠진 아이들 이고 비전 없는 직장인은 맥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존재였다.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며 부모는 아이에게 꿈을 강요했다. 학교와 사회에서도 꿈은 일찍 가질수록 좋은 것이라며 부추겼다. 


꿈은 원대하게, 이상은 높게, 비전은 명확하게..


그러나 현실은 팍팍했다. 몽상적인 꿈은 허용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것만이 꿈으로 인정되었다.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은 구체적인 꿈을 강요 받았다. 중고등학생, 심지어 더 어린 초등학생이 의사, 법조인, 펀드매니저를 꿈꾸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 받아 꿈을 ‘만들었다’. 그들은 병든 사람을 고치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고, 공익을 위한 돈벌이와 같은 그나마 희망적인 바램이 아니라 구체적인 ‘직업’을 말하는 요지경이 펼쳐졌다. 


꿈을 가장하여 직업이 초 절정으로, 조기에 선택되는 기적이 이 땅에 벌어졌다. 


그 직업은 한미 FTA 3대 핵심 시장과 최고 내신 등급 학생의 희망 학과가 겹쳐지는 영역이었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동일한 영역이었다. 영리 병원, 법무 법인, 금융 회사는 ‘자본과 권력’이라는 원천적 욕구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었다. 그렇다. 그곳은 젓과 꿀이 흐르는 땅, 그들만의 유토피아 ‘라퓨타’였다. 


공중의 섬, ‘라퓨타’ 밑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유토피아 ‘라퓨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곳으로 가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좌절했다. 자신의 현재는 미래를 위한 도약대에 불과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자는 게으르고, 나약하고, 엉뚱한 낙오자로 몰렸다. 꿈꾸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는 목소리는 세상 어디를 가도 지겹게 들을 수 있었다. 


빅브라더의 힘이 작용한 것일까, 그들에게도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높고 원대함을 반영한 듯이, 구현된 꿈에는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국민 요정 김연아, 국민 남동생 박태환, 국민 가수, 국민 아이돌 누구 누구.. 그 열망은 미디어에서 증폭되어 온 나라에 퍼져나갔다. 그들의 수입이 공개되고 자본가, 권력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결과 매체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그 정점을 향해 모든 이가 웃고, 우는 초 절정 Republic of Dreaming이 되었다. 그곳은 ‘발나바르비’였다.


그러나 꿈꾸는 나라를 의심한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하늘로부터 떨어진 조명등을 발견했다. 우주와 빛만 존재하는 그곳에서 떨어진 그 조명등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물건이었다. 우주에서 평행한 빛이 우연히 조우 하듯이, 아주 우연히 그의 옆에 떨어진 그 물건은 그에게 의심이라는 단초를 제공했다. Contingent!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꿈꾸는 생활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그 우연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뜨고 지는 태양을, 푸른 하늘을, 넘실대는 바다를 다시 보았다. 정치권 보수와 진보의 주장인 자유•안정•성장•시장의 가치도, 평등•변화•분배•국가의 가치도 의심했다. 결국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했고 또 다른 세상을 상상했다. 금지된 몸의 욕망과 본능의 배를 타고 그는 바다 끝까지 갔다. 거기에서 그는 쪽문을 발견했다. 


너희들의 유토피아는 트루만 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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