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일기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식 잃은 시련을 겪고 있다. 가까운 사람이 겪고 있다. 바라보는 옆사람도 힘든데, 당사자인 부모의 마음은 어떨지 헤아리기 어렵다. 아니 불가하다. 아니 이런 말이 의미없다. 이 책도 그 사람이 조금씩 마음 잡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찾았다. 바라보고, 위로해 주고, 어루만져 주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건방졌는지,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수십 일이 지나 돌고 돌아 이 단계에 왔다. 


세상 사연은 얼마나 다양한가. 공개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둔 날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 하나하나를 모두 들어보고, 읽어보면 나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까. 천 개의 사연이 있다면 천 개가, 백만 개의 사연이 있다면 백만 개가, 모두 다르다. 조금이라도 견주어 내 아픔을 위로 받을 수 있는 다른 사연은 없다. 나의 우주속에는 단 하나의 사연만 있으니, 그것이 가장 불행한 사연이 될 수 밖에 없다. 남의 불행으로 나를 치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처음 알게된 단어, ‘참척'의 시련과 고통을 일기 글로 남긴 선생이 대단하다. 아니, 그것이 선생을 지탱하는 힘이었을까. 자식 잃고 2주만에 글을 쓴다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극복하는 과정은 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매뉴얼도 솔루션도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처음 부터 많은 부분에서 신에 대한 원망, 나 말고 남이라는 저급한 마음, 치졸한 욕망, 동물적인 표독함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세상 그 어떤 일도 자식 잃은 심정과 비교 불가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같은 아픔을 가진 당사자가 읽는다면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는 없을것 같다. 


울고, 화내고, 욕하면서 그 힘으로 긴 터널을 지나갈 수 있기를,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든 서로의 큰 상처를 돌봐주고 회복 할 수 있기를, 절대 해서는 안될 말, '참회하고 감사하며 지금 여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날이 서서히 오기를, 기도한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물론 남을 해친 적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