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범의 세상에서는 홍수나 가뭄을 알지 못하기에 하늘을 원망 하는 법도 없으며, 원수가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므로 다른 존재들에게 미움을 살 일도 없다. 천명을 알고 거기에 순종하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사한 속임수에 넘어가지도 않고, 타고난 바탕 그대로 천성을 온전히 실현하므로 세상 잇속에 병들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뜻을 얻은 곳에는 두 번 가지 않는 법, 만족함을 알면 위태롭지않다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벌써 이런 그릇된 마음이 일다니. 대체 왜? 아마도 내 견문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부처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살핀다면 무엇이든 다 평등해 보일 테지. 모든 게 평등하면 시기와 부러움이란 절로 없어질 테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막바지, 연암은 자신이 던진 화두에 대해 하나의 답을 찾아낸다. 고북구 장성을 지나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강행군을할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견마잡이 창대가 발을 다쳐 뒷수레에 실려오고 연암이 홀로 말을 타고 물을 건너는데, 그야말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이었다. 폭우로 범람한 강을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건너 면서 연암은 ‘이제야 비로소 도를 깨우쳤노라‘ 고 소리친다. 그가 말하는 도는 명심眞心이다. 명심, 말 그대로 어두운 마음‘ 이다. 도가 어 두운 마음이라니, 웬 선문답? 도를 깨치면 눈이 밝아져 사방천지가훤히 드러나야지, 다시 깜깜해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게바로 연암식 패러독스다. 그가 말하는 명심이란 ‘이목耳目의 누宗, 곧분별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분별을 내려놓는 그 순간,
‘목전에 펼쳐지는 깊은 적막과 평정, 연암은 그것을 눈과 귀가 사라 지는 ‘어둠‘ 으로 표현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