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해신 서의 창해 십이국기 3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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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인류는 전쟁으로 파괴와 시작을 반복하며 흥망성쇠를 겪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은 백성들은 그 참담함을 기억하지만 역사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이 책에서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 이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인간이 원하는 이상향을 위한 방법이 전쟁밖에는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염두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아련한 느낌이 전해진다. 안국, 선왕의 통치로 피폐해진 나라는 황폐함으로 굶주리는 백성들로 넘쳐난다. 이런 나라를 위해 나서는 이가 있다. 둘 다 백성을 위한다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또 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틀리지 않았지만 단 한가지 전쟁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그저 그런 판타지 소설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세상, 그 곳에서의 정치 체계는 우연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아니 너무 확고한 체계로 정해져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인지하지도 다가갈 수도 없지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기린이라는 존재는 양쪽을 오갈 수 있다. 소설 속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인간들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그쪽에서는 봉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쪽 세계의 체계가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 “고야”는 “봉래”라는 이쪽 세상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굶주림과 고통이 없는 세상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쪽이나 그쪽이나 전쟁의 고통으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왕이 존재 이유가 소설 속에서는 명확하다. 백성들이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신성한 방법으로 왕을 뽑았다고 하지만 반기를 드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아쑤유”가 그런 인물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 왕을 몰아내고 본인이 실질적인 왕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다르게 본인의 명성을 위해 봉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또 한편에서는 지도자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평소에 정신 나간 것 같은 왕이 비로소 본인의 소임을 착실하게 수행한다. 일촉즉발의 전쟁 전야에서 백성들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와 같은 지도자를 더욱 갈망하는지 모르겠다. 위선적인 모습의 지도자가 아닌 백성의 삶을 생각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 때문에 작가는 전쟁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십이국기”의 세상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고민 중에 우리는 십이국기 속 왕의 선출 방법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천제의 뜻을 이어받은 신성한 동물인 기린에 의해 왕은 선택된다. 기린은 본능적으로 왕을 예감할 수 있다. 이렇게 선출된 왕이 나라를 잘못 다스리면 기린은 병들어 죽게 된다. 기린이 죽으면 왕 역시 죽게 된다. 요즘 현실정치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확실한 책임이 전가된다. 정치가 잘못되면 백성이 고통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못해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기에 이 책의 확실한 책임제도가 눈길을 끄는 것이다. 왜 우리가 지도자를 뽑아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라의 지도자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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