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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심청전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저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든 효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닌가 보다. 내가 알고 있는 줄거리에서 파격적으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섬세한 감정을 덧입히고 나니까 내가 알던 심청전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껴본 것 같다. 특히 심청이를 인당수로 떠나 보낸 뒤의 아비 심학규의 처신을 보고 있자니 몇 번이고 책을 덮었는지 모르겠다. 심봉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심정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반면 누군가는 모든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왜 차이가 있을까? 분명 그릇된 행동이지만 본인의 욕망과 욕심 때문에
그런 행동이 잘못됐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봉사가 가여웠던 것은 돌봐줄 사람 없어서 행색이 초라하고
눈먼 장님이라서가 아니라 제대로 사리분별을 못하는 마음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심봉사와
처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욕심 때문에 그릇된 생각으로 행동을 할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모 든 것을 베풀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심청이는
봉사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희생하지만 이 책은 선악만을 너무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
다섯 살 심청이는 아버지의 혼탁해지는 모습이 못내 부끄러웠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감정
표현을 설정했다는 것이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심청이가 전례동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감정이익이 수월했다. 사랑하는 윤상이를 생각하면서도 아버지를 떠나버리지 못하는
내적 갈등에서도 열다섯 살 소녀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갖은 고생으로 지금의 또래 아이들보다는 훨씬
조숙했지만 여전히 소녀의 마음을 간직한 아이였음을 알게 해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심청에게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판타지 같은 이야기와 소녀의 내적인 갈등이 조화롭게 이뤄진 것이 사뭇 신기하기만 하다. 전례동화의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감정묘사가 단연 돋보인다. 잠시 나마 나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무치는 마음을 달래보려고 속으로 흘렸던 눈물이 얼마던가. 이 책은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