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 보수의 피로 개혁을 갈망한 비운의 군주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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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태평성대를 일군 성군으로 묘사된 정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정조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신하들과의 갈등도 많았다정조가 집권한 시절이 당파 갈등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다세손시절부터 죽음을 무릅쓴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또한 당쟁의 희생양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이런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손 정조는 가슴속 한 구석에 한이 서려있었을 수도 있다그는 집권하여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을 한다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후에 정조를 일찍 요절한 장남 효장세자의 대통을 잇게 한다이런 영조의 결정에 정조는 반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아니면 맺힌 한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정조가 집권하자마자 이런 선언은 단순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사도세자 죽음과 관련되어 피바람이 휘몰아칠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 한가지는 사도세자가 노론과 맞섰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영조의 말대로라면 광증이 심각해져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아들을 죽였다고 하는데 그 실상을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다단순히 한가지 사실만으로 그 때의 사건을 단정짓기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이 책에서는 정조의 정치적 한계를 이야기한다아버지 사도세자의 그늘에서 집권기간 내내 벗어나지 못했다고 가혹한 혹평을 한다수원화성 건설도 사도세자와 연관이 있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 집안을 가혹하게 처벌한 것도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또한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세력이었던 정후겸 등도 제거한다비단 보복성의 조치만 취한 것은 아니다정조 개인을 살펴보면 학문적 깊이가 세종대왕에 버금갈 정도로 학습과 훈련이 잘 되었다고 한다즉위하면서 개혁과 대통합을 위한 탕평책을 시도했으나 절반만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다이유는 그가 죽은 뒤로 집권한 노론 벽파에 의해 모두 폐기되었고 끝까지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 책에서는 정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사도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 때문에 집권시기 내내 그의 정책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안타까움과 그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조선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조선이 외세에 대항할 수 있는 내공을 쌓을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정조의 집권시기는 우리민족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거나 퇴보하거나 결정하는 시기인데우리는 퇴보를 선택하게 된다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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