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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을 말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가슴 절절한 사랑을 글로 남길만큼 애절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게 한스럽다. 그저 누군가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읊조릴 뿐이다.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언제 들어도 가슴 한 켠이 아련하게 저려오거나 저 밑바닥부터 뭉클하게 솟아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되어 온 수많은 사랑이야기가 있지만 여기 조선시대의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에서도 다시 한번 절절함을 느낄 수 있다. 신분의 귀천을 넘어선 시간과 공간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현대인들이 쉽게 하는 그런 사랑이야기가 아닌 뜨겁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은은하게 식지 않는 그런 사랑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김려와 연화의 사랑이야기를 저자의 은은하고 절제된 필체를 통하여 그네들의 가슴저리며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십대이다.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의 이 젊은 남녀의 첫 만남은 불같이 시작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식지 않고 불타올랐다. 아마도 첫만남부터 서로가 사랑에 빠지면서 서로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조선시대라면 왠지 모르게 남녀간의 사랑은 금기시하는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못할 보수적인 사회일 것이라는 편견을 뒤로 하고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지금처럼 한 순간 불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일회성 사랑이 난무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다.
사회적인 억압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다. 연화는 관노로 귀속된 몸이라 북쪽으로 떠나 보내야 했고, 김려는 가문을 위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희생양으로 김려는 오랜 시간 동안 귀양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 수많은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를 간절히 원했으나 육체적으로는 떨어져 지내야 했다. 허나 사랑하는 마음만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려는 문장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연화가 지은 많은 시를 읊조리고, 시를 통해 그들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중간중간에 나오는 시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그들의 애끓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졌건 아니건 간에 이 책 속의 사랑이야기처럼 평생을 걸쳐 그리워하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러웠다. 물론 그들이 사랑하며 평생 행복하게 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그러면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여느 사랑이야기처럼 쉽게 잊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읽는 사람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하고 애잔하게 끝을 맺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김려가 연화에 대해 추억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연화의 모습을 나름대로 그리면서 그 감정까지도 헤아려 본다. 아마 지금 사랑에 빠진 이들은 한번쯤 읽어봤으면 한다.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한가지를 알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