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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훔친 사람들 - 그들은 어떻게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었나?
스티븐 코틀러.제이미 윌 지음,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불을 훔친 사람들
언젠가 시지프스 신화에서 시지프스란 인간이 신에게 노여움을 받아, 산꼭대기에서 바위를 굴려 내리고, 그 굴려 내린 바위를 다시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일을 3천 년 동안이나 하며 살았다는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시지프스는 고단한 작업을 매일 반복해서 해야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런 반복적인 삶을 불행하다고 느꼈을까? <<불을 훔친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었던 그 궁금증을 떠올렸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을 속이고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을 때,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며 베풀었던 인정이 자신에게 평생 동안 바위에 갇혀,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의 공격을 받을 때, 그 순간, 그가 받는 고통을 나는 시지프스의 고통과 비교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고통을 그냥 고통으로만 알았을까? 아니면 그들이 도와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소신을 믿으며 얼마든지 고통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기쁨을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거나 했지 않았을까?
시지프스처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지혜나 경험을 인간들에게 알려주거나 프로메테우스가 준 불처럼 인간들에게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물리적 도움을 주었다면, 인간은 그것을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받아들였을테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도움을 당연한 물처럼 공기처럼 누렸을 것이다.
인류시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지프스나 프로메테우스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이런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지혜와 불을 처음 접할 때는 엄청난 환희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2000년대 초에 한창 컴퓨터산업이 뜨면서 통신 부문 쪽에서 프로그래밍 언어가 한창 뜨고 있었다. 웹디자인, 로봇을 만드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그때 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만진 것처럼 그 인터넷 세상이 신비로웠다. 최고의 경험이었다. 하나하나 영문문자로 코딩을 하면
인터넷상에 띄울 수 있는 웹화면이나 대화창이 떠올랐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내가 어제 퍼실테이터란 강의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2000년대 초에 코딩하던 그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이젠 아주 쉽게 코딩화해서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녔고, 이젠 솔루션이 있어서 일일이 그 언어들을 외우고, 책을 보고 이러면서 코딩해지 않아도, 자료들을 구해다가 복사해서 붙이면 그냥 구현이 되었다. 나는 어제도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받아들은 느낌이었다.
우리 주변에 프로메테우스들이 널려있어, 우리들은 불을 받아든 기쁨에 넘치게 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프로메테우스들이 우리 인류에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내 머릿속에 꽉 차올랐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옥션, G마켓, 네이버, 다음, 야후... 사실은 수도 없는 프로메테우스들을 우리들은 경험하며 여기까지 살아오고 있다. 자율주행, 테슬라, 인공로봇, 3D프린터,... 수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불쇼를...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경험해야 되지 않을까? 사실 마약에 빠진 것처럼 그들이 훔쳐다준 신의 불을 우리들은 물처럼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처럼 사용하고 있다. 우리들 영혼 마저 디지털화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황금만능주의,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살면서 불놀이 중독에 푹 빠져 우리들은 헤엄쳐 나올 수 없는 걸까?
중독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왜 마약만 중독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을까? 술, 담배, 커피, 마약, 포르노, ... 컴퓨터 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스마트폰 중독, ... 수도 없이 우리들 주변에 널려 있고,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그것들이 내 인생을 좀 먹고 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이 그 중독을 즐겼던걸까? 왜 나는 한 번도 그 중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
프로메테우스들은 처음 우리들에게 불을 줄 때, 인간의 뇌를 좀 먹는 중독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프로메테우스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들에게 불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하늘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왜 그 프로메테우스들이 측은해지는 걸까? 불을 잘 사용해서 음식을 익혀 먹는다던가, 추위를 몰아내는데 만 사용하는 인간들만 있으면, 프로메테우스들의 공로는 더더욱 칭찬받아 마땅한 일일 텐데... 꼭 역기능을 생산해내는 인간들도 있으니,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뭔가에 몰입을 하면, 인간의 뇌의 한 곳이 막혀버린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것은 아닌지. 무엇인가 집중해 있으면 상대적으로 꼭 까맣게 잊어먹고 있는 부분이 늘 존재한다. 현실적 감각을 잃고, 무아지경에 빠져 실제로 해야 할 일을 잊는다던가, 놓쳐버린다던가 우리 종종 그러지 않나?
불을 받아들고 옉스타시스가 부상할 때마다 인간의 역사는 바뀌었고, 반드시 오용하는 사람이 나타나 골칫거리를 앓고 있는 것이, 여태껏 인간사 아니었던가? 왜 이런 비관적인 생각이 한 구석에 남는 거지?
요즘 핵을 만드는 원료, 우라늄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정말 인류사회에 축복이었다. 그러나 핵폭탄을 만드는 것에 쓰이게 되고 그것은 인류사에 재앙의 시초로 손꼽히는 물질이라 말한다면 반박할 말을 나는 잃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통을 피하려다보면 순간의 고통은 피할 수 있지만 오래 시간을 두고 보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핵발전소를 보자,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미래의 불행, 불 보듯 뻔한 불행의 길을 우리는 걷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