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어하는 그대에게를 받아들고 솔직히 조금은 설레였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집이기도 했고, 또 그 안에 내가 수시로 시들을 읽으며 좋아했던 시인들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프링 손택수

 

 

사내가 수레를 끌고 언덕바지를 오른다 사내의 비틀린 몸은 땀방울을 쥐어짜고 있다

 

수박이 실린 수레 뒤에서 배가 불룩해진 여자가 끄응끙 수레를 따른다 한쪽 손으로는 무거운 배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수레를 밀면서

 

지난봄 사내의 넝쿨 끝엔 딸기와 외가 열렸었다. 상하기 시작한 딸기를 자주 헐값에 팔어넘겨야 했었다

 

소아마비 뒤틀리는 사내의 몸속 굽이치는 무늬가 길을 휘감고 오른다 만삭이 된 수박 수레바퀴를 돌린다

 

저 고행 끝에 가을이면 꼬투리가 터지리라 단단한 꼬투리 뒤틀어지는 힘으로 씨앗들이 톡톡 터져 나오리라

 

머리가 짓눌릴 때마다 볼펜을 똑딱거러며 바라보는 사무실 창밖 배배 튼 길이 꼭 볼펜 속 스프링 같다. 꾸욱 짓눌리는 힘으로 따악 소리를 내며 튕겨오르는 스프링.

 

날아갈 수 없는 허리와 목을 비틀며 기지개를 켠다 언덕 위의 꼬부라진 골목길 넝쿨넝쿨 뻗어간 몸에 맺힌 만삭 한 덩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시를 한 편씩 읽고 저자의 해석을 또한 읽고 있으려 주옥같은 추억들이 내 머릿속을 행복감에 젖게 만들었다. 저자의 생각과 추억들, 저자만의 입담으로 써내려간 문장들이 내 입술에 착착 달라붙었다.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감칠맛 나는 문장들에 푹 빠져, 전철을 올라타도 책장을 펼치고, 버스를 기다릴 때도 책장을 펼치게 된다. 가만히 저자의 단상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시골 어느 이발가게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감칠맛 나는 글맛에 단숨에 읽어내려가다가, 어느 굽이를 돌아갈라치면 그 모서리쯤에 저자의 어린 시절이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 늘 바쁜 저자가 일상에서 시의 소재를 얻어 생활시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전철안에서 버스안에서 쪽지에 메모하고 또 메모한 것들이 주머니안에서 쏟아져 나오듯이 그의 생활시는 진솔하게 쏟아져 나온다는 생각에 감동이다.

 

시골 이발소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구수하다. 김기택 시인만의 이발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는 그저 구수한 추억담을 이야기하지만은 않아 깜작 놀랐다. 하다하다 막바지에는 이상한 짓을 하다가 세상밖으로 쫒겨나가 골로 간 이발소 이야기, 그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는데, 시인의 눈빛이 평범한 이야기에서 맺는 것이 아니라, 치부까지도 과감하게 말하는 그의 입담엔 그저 놀라울 따름였다. 역시 시인으로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 미사여구로 치장을 하는 것이 아닌, 솔직 담백하게 삶을 통찰한 내용에 어쩌면 내 자신이 이 책을 읽으면서 시로 숨을 쉬게 되는, 숨통이 확 트이게 되는 계기가 되는, 다시 시를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말로만 듣던 김기택 시인, 그저 사진으로만 뵈었지만, 문장 곳곳에 숨겨져 있는 따스한 한 마디가,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가, 죽어가는 내 뮤즈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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