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비밀 -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 아시아 문학선 15
바오 닌 외 지음, 구수정 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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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의 비밀

 

 

그로테스크한 내용도 아니면서 그로테스크하게 읽힌다. 판타지도 아니면서 판타지처럼 읽힌다. 소실이 허구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면서도 푹 빠져서 읽었던 이유는 문체가 아름다워서이기도 했지만, 따라가는 내내 스토리 전개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리라. 강바닥에서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이름 모를 여인이 그를 올려다고 있다며 자신의 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남자, 홍수로 불어난 강물 속에서 건져 올린 것은 자신의 딸아이가 아니라 솟구쳐 오르던 여인의 아이라는 것을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말하는 저자의 문장에 탄복하고 만다. , 나는 왜 이런 문장을 쓰지 못하지?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전쟁에서 느꼈던 경험을 녹여 홍수로 겪었던 일로 소설화하고 있다. 한바탕 휩쓸고 간 수마로 인한 생채기들, 그러나 강물은 잔잔하게 말없이 흐르는 것이다. 그러나 고요히 강바닥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아내와 아이, 그리고 이름 모를 이웃이었던 여인이 자신의 올려다보고 있다고 그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땀 흘려 개척해놓은 땅을 마을에 수도사가 들어와 그 땅을 가로채고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는 수도사에게 반발하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 어느 곳에든 이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예나 지금이나 악덕 고리대금업자처럼 가난한 사람들 등골을 빼먹는 이야기는 종종 읽힌다.

 

 

제방 둑이 폭격을 맞아 무너지면서 쓰나미처럼 몰려오던 물결, 그 물결에 밀려 지붕위로 간신히 올라가 떠내려가다가 도토리 열매처럼 나무에 매달렸던 사람들, 겨우겨우 그렇게 매달려 피난을 했지만, 그들의 마지막 사투를 벌이던 나뭇가지마저 와직끈 불러졌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이 대목을 읽다가 6.25가 떠올랐고, IMF가 떠올랐고, 천안함, 세월호가 차례로 떠올랐다. 더 이상 우리에겐 안전한 제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 거센 물결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거세게 밀려오는 쓰나미에 내던져질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슬픔의 얼굴이 우리들 자화상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밖으로는 제방이 무너져서 안으로는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가 수탈을 해서 무너지는, 외세와 내세가 힘없는 서민들의 생명을 수탈하고 일상을 수탈하는, 가렴주구의 참혹한 상을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하고 있음이 놀라웠다.

구구절절 설명조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명료하게 오랫동안 역사의 물결 속에 숨어 있는 비밀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4살 때 기억이 난다. 갑자기 내린 비로 홍수가 나서 집으로 가는 내를 건널 수가 없었다.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내를 건넜다. 나를 아버지가 목마에 태워 내를 건넜다. 그때 붉은 물이 달려와 아버지 허리춤을 휘감던 그 물결을 영영 잊지 못한다. 그 물결은 금방이라도 우리 가족을 집어 삼킬 듯 사나웠다. 나는 원숭이 새끼처럼 죽을힘을 다해 아버지 목에 매달렸다. 물이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날이었다. 그 후 잔잔한 물조차도 무서운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가만히 우리나라 역사의 강을 들여다본다. 그 강물엔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아픔이 배여 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과 비밀이 숨어 있을까? 말없는 강물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밑바닥에서 우리들을 올려다보는 이름 모를 얼굴들이 수도 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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