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처음 읽는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론'
허버트 스펜서 지음, 유지훈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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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2 딸을 가진 엄마로서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더구나 21세기 이 복잡다단한 세상살이 쫒아가기는 하지만 턱턱 숨이 차오른다. 이런 시대에 태어난 딸아이의 앞날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여기저기 과외다 학원이다 엄마들 치마바람이 세차게 불때마다 그것들에 염증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어둠 저편에서 기어나온다.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초스피드를 내는 그 물결을 따라잡지 못해 스트레스가 만발해 있는 상태다. 좌충우돌 혼자서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엄마가 뭐 도와줄 일을 없나 두리번 거리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지 오래다. 이제 어쩌랴. 차라리 이 복잡한 세상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라고 딸아이에게 맡길 도리밖에 없다고 포기하다가도 좋은 강의나 책이 있으면 눈길이 간다.

 

이 시대 유행하는 교육에 탑승하지 못한 승객으로 플랫폼에 남은 나는, 아이의 앞날을 아이에게 맡기고 있는 못난 엄마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있는 찰라에 <<무엇을 가라칠 것이니까>>란 책을 받아들었다. 고맙다. 나에게 또 다른 도전과 지혜를 주리라 믿는다. 과연 나의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을까?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나는 믿고 싶어진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책이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의 영국의 교육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솔루션을 펼치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들이다. 전근대적 교육 방식이 현대의 삶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산업혁명에서 지식정보혁명으로, 이젠 사물인터넷혁명에서 인공지능혁명까지 발전해 우리 삶에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생활이 되어가는 시대에서, 전근대적인 교육 방법이 통할까? 궁금한 호기심 가득찬 마음으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들여다본다. 전체주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무조건 암기하고 4지선다형 문제만을 죽어라 풀던 아이를 들여다보면서, 답이 정해진 단순한 4지선다형 문제로는 삶에 닥치는 문제를 절대로 풀 수 없는데, 이런 교육 방식으로는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저 4지 선다형 잘 찍어 SKY 대학 나오고 사자붙은 직업이나 대기업, 공무원 직장 잘 잡고 시집장가 잘 가면 되지...라 생각들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내 아이는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먹는다해서 그것이 잘 이행될까? 당장 엄마의 마음은 무척이나 그런 현실이 안타까울 것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값어치가 있는 지식이 아니라, 환호와 명예와 존경을 받거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보장받거나 혹은 대중의 눈길을 끌 만한 데 관심을 둔다. 이처럼 본연의 자아가 아닌 남에게 비치는 자아가 중요하고, 교육에서 지식의 내재적 가치보다 외재적 영향력이 더 중요시되는 것이 한국의 교육에 대한 실정이다.

 

문제는 다양한 지식의 상대적 가치가 거의 논의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녀에게 그냥 주입식, 4지선다형 지식뿐이다. 관습이나 선호 혹은 선입견이라는 울타리에 의한 직업 선호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정작 배워야할 지식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따져보는 것의 중요성도 직감하지 못한 채 그저 유행에, 관습에, 대세에 우리는 끌려가고 있다.

 

고전과 수학에 대해 서로 우열 다툼을 한다는 그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고전은 고전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수학은 수학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데, 그 상대적 가치는 가르치지 않고, 그저 경제실리주의, 신자유주의에 맞물려 우리는 그저, 현실에서 당장 직장을 잡기 좋은 것을 우위로 하위인 것은 아예 대학에서조차 과를 없애는, 그런 웃지 못할 비현실적 교육관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숲을 바라보자. 숲에는 거목이 있기도 하지만 아주 바닥을 기는 민들레 같은 풀도 존재한다. 크고 작음이 어울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거목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제초제를 뿌려 싹 말려 죽이자는 정책으로 달리고 있다. 나날이 삭막해져가는 세상에서 더더욱 쇳소리만 난무하는 세상으로 변화해간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빵이 영양가가 더 많냐? 감자가 영양가가 더 많냐라는 문제가 영양학의 전부라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펜서는 말한다. 경험이 삶의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가 개진해야할 문제는 어떤 지식이 가치가 있느냐가 아니라 지식의 상대적 가치가 무엇인가라고 해야 옳단다.

 

스펜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주제는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원대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세우게 되고 이러한 목적을 감안하여 육아에 필요한 교과와 교수법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유행하는 교육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21세기 정보의 시대, 대중 매체의 시대 쏟아지는 정보를 다 배울 수는 없다. 다 잘 할 수는 없다. OO~~이다라는 정의정도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당장 앞에 닥친, 관심이 가고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해서 해야 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교육적 상황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든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생의 커다란 주제가 어떻게 살 것인가란 커다란 주제를 갖고 살아가게 되고, 그에 따른 교육의 목적과 목표과 세워지고 교과과정과 교수법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녀보다는 자기를 위한 교육, 국가보다는 가정을 위한 교육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처한 모습을 볼 때, 조선시대엔 전체주의가 온 나라를 지배했다. 충효에 대한 것만 달달 외우고 과거를 보고 하는 과정 속에 양반들만의 필독서가 있었고, 충효에 대한 그들만의 주입식 교육이 만연해 있던 사회였다. 개인의 개성이나 인성에 맞는 교육은 전혀 없는 그저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기였다면, 현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공부하는 것이 현대인답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충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체주의 주입식 교육의 잔재가 뼛속 깊이 남아 있어, 우리 자녀들의 행복한 삶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저자는 자기 보전에 직결되는 활동, 생활 수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보존에 지결되는 활동, 자녀의 훈육에 관한 활동, 사회, 정치적 인맥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 주안점을 둔 활동, 여가에 해당되며 취미와 취향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활동 등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학교 공부시절에 했다면 나중에 직장에 나아가서도 그 분야를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즐기며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즐겁게 연구하고 행복하게 일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미래의 나의 딸을 상상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공부, 재미있는 학교를 꿈꾸며

부모와 교사와 국가가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학교를 가는 것이 아닌, 콧노래를 부르며 교문 앞을 들어서는 나의 딸을 꿈꾸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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