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들의 소풍 열린시학 기획시선 87
우경주 지음 / 고요아침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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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들의 소풍

 

 

 

『시계들의 소풍』이란 시집 제목을 읽었을 때, 표지 1에 커다란 시계가 보였다. 거기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커다란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초침과 분침이 두 눈에 확 들어온다. 죽 읽어간다. 읽어나가는 행마다 술술 잘 읽힌다. 그러나 술술 익히면서 한 편으로는 가슴 한켠 찡하게 울리는 그 무엇이 있다. 시적 화자의 시선으로 삶의 궤적을 따라가본다. 그림과 악기들이 출현하는 곳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문다. 그러다가 미술과 음악이 출현하지 않는 시에 머물러본다.

 

 

  

손가락 끝과 끈

- 노숙자들의 템플 스테이

 

 

세상의 끈을 놓친 손가락이

끈 하나 붙잡고 한 발 한 발 짝을 지어가는 시간

오른쪽 둘째손가락 끝만 간신히 맞대고

눈 감은 사람이 눈 뜬 사람을 따라간다

용주사 절 마당을 지나 다다른 돌계단

높낮이가 달라 서로 마음을 놓칠까

아슬아슬 손가락 끝에 온 마음을 매단다

도시의 귀퉁이를 헤매던 바람들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바람 부는 거리에서 몸 하나 뉠 곳 없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 같은 처지인 것을

손가락 끝에 잠시 흘러간 시절을 묶어놓고

불운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메마른 손가락에 힘을 준다

이젠 거리의 질긴 끈 놓고 싶다는 듯

따뜻한 끈 하나 갖고 싶다는 듯

붙잡을 곳 찾아 이곳에 모인 바람 따라

도시의 그늘도 함께 따라 왔다

골목을 헤매고 다닌

저 바람 끝에서 노숙의 끈이 풀린다

 

 

  

우경주 시인의 시들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따스하게 적신다. 그 중 손가락 끝과 끈은 잔잔하게 귓가에 다가와 속삭인다. 행간과 행간, 연과 연 그 사이에 드리워진 그늘 속에서도 따스한 한 줄기 빛이 보인다. 우리네 생에 그늘이 드리운 날이 있는가 하면, 밝은 빛이 드는 날도 있게 마련이다. 세상 모든 삼라만상은 음양오행이 모두 존재한다. 음과 양은 따로 분리되거나 서로 대립하는 의미가 아니다. 안과 밖이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를 한다. 서양의 흑백논리로 음과 양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늘을 동양철학으로 보았을 때 훨씬 넓고 깊은 사고의 세계가 펼쳐진다. 언젠가 주역을 공부하다가 자연의 순리, 우주의 원리를 배웠다. 그때 음양오행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사진 스승이셨던 데이비드 알란 하비 선생은 서양의 모든 문명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동양사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은 동양사상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미국에도 동양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을만큼 휼륭한 철학이라고 열강을 하시던 기억이 난다.

 

노숙자하면 구제불능인 사람들이라고 인식한다. 그들은 스스로 사회적으로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왕따를 시키는 삶을 산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지저분하게 냄새나 풀풀 날리며 아무데서나 노숙하는 사람들, 하찮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편견을 갖는다. 이런 보편적 인식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그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차별적인 생각이다. 그들도 우리 자신처럼 소중한 존재이고 귀한 생명이다. 손가락 끝과 끈를 읽는다. 자신들의 메마른 손가락에 힘을 주어 구원의 끈을 잡는 노숙자, 어떻게서라도 절실하게 살아보려 애를 쓰는 애절함에 애틋해진다. 사실 음과 양은 한끝발 차이다. 아니 그것들은 하나이다. 가만히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한 쪽엔 그늘이 있는 구석이 있는가하면 또한 한 구석은 밝은 곳도 존재한다. 음양오행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라. 인간의 마음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있고 거기에 또한 삼한사온 날씨도 있다. 그런 만큼 마음 먹기에 따라 당신의 대지는 그늘이거나 양지이거나 봄이거나 겨울이거나 순리에 따르는 듯 하지만, 또한 내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아주 사소함에도 그늘을 느끼고 밝음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마음에 온갖 풍백, 운사, 우사를 다 모시고 산다.

 

자연을 닮은 인간의 마음은 삼한사온 날씨이다. 흐렸다 개었다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연약한 존재이다. 그나마 눈물 나는 것은 비오는 날 우산을 펼쳐든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드리운 그늘만 존재한다면, 아니 일년 365일 햇빛 쨍쨍한 날만 있다면 삶이 너무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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