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 하버드 석학들의 36가지 질문,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묻다
하버드대학 중국연구소 지음, 이은주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하버드 석학들이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묻는 36가지 질문, 중국은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은 미래를 향해서만 문이 열려 있다. 하버드대학의 샤오페이 티앤은 이 책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를 말살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문화대혁명의 선언이 모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운동 자체가 과거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역사학자 막스베버는 체제 정당성 근거에는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합리적-법적 권위를 들었다. 이중 중국 공산당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훨씬 더 중국은 복잡했다. 마오쩌둥 이후로 25년 동안 중국의 공산 정권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려면 똑똑한 지식인을 육성해야한다고 생각한단다.

중국은 역사 다시 쓰기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념과 정치제도의 뿌리가 전부 소련에 있는데, 오늘날 소련은 혁명 전 중국 모습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극복할까? 또 영광스런 5천 년 중국 역사의 관리자로 자처하고 싶은데 시진핑 정권은 쉽지 않다.

 

역사적 기록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결국 견뎌내기 힘든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의 기초가 됐던 사회 정의 실련을 위한 노력이야말로 중국공산당 통치의 도덕적 근거를 세우는 든든한 발판이 돼줄 것이다. 그러자면 공직자의 부정행위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반부패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경제 개혁에 수반된 극심한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극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덩샤오핑이 홍콩에 인접한 선전경제 특구를 방문한 후로 굵직굵직한 비리 사건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단다.2008년 금융위기 후 5조 위안을 중앙정부가 경기부양 목적으로 쏟아 붓자, 새로운 부패의 물결이 중국을 강타했다.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매년 부패 척결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부패를 저지른 사람이 기조 되지 않았다. 시진핑이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반부패운동이 속도를 냈다.

 

시진핑은 반부패운동을 하면서 소련 공산당이 무너지게 된 이유가, 이념과 신념이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사례를 틈만 나면 들먹었다. 시진핑은 공산당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시진핑이 내세운 법의 지배를 옹호하고, 나아가 시민 사회의 등장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진보적 의제를 접한 일부 순진한 지식인들은 안타깝게도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시진핑은 이 의제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지식인들이 믿도록 진보적인 신문 <남방주말>중국의 꿈, 헌정의 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시진핑의 속내를 어림짐작하면서 폭풍 성장하는 중국 호랑이의 숨겨진 발톱을 보는 것만 같아서, 소름이 짝 끼쳤다. 요즘 남북한과 북미, 북중, 그리고 주변국들 정세의 움직임들을 보면서,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대한민국이 놓여있는 정세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아, 더더욱 중국에 대한 촉각이 예민해지고 있다. 앞으로 시진핑은 공산당의 정당성을 수립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자국의 경제적 실리를 추구할 것이란 예측이 저절로 떠올랐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후진적 농업 국가에서 세계 2위의 산업 경제국으로 변모했다. 중국 인민들은 이전보다 훨씬 부유해졌고,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사치품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억만장자까지 출현했다. 1972년 마오쩌뚱과 닉슨은 국교 정상화 합의 이후 양국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마오쩌뚱이 죽은 후, 양국 관계는 다시 경색됐다. 이미 중국은 세계 최대 강국,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나, 시진핑은 마오쩌뚱과 같은 수준의 중국 최고의 지도자를 꿈꾼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조짐으로 시진핑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를 마오쩌둥 시대와 개혁 시대로 중국 역사를 구분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에서 마어쩌뚱은 혁명 과업을 완수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한 최고의 지도자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새로운 국가 이념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마오쩌둥주의로 대표되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마오쩌둥의 사상이 국가 통치의 근간이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자본주의 나라에 개방을 하는 척 자국의 이익을 챙기면서, 실제적으로는 공산국가 체제를 더욱더 공고히 하고 있는 시진핑, 교활한 호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큰 나라가 발톱을 숨기고 착한 중국으로 보았던 지난 10년 우리는 과연 잘 살아낸 것일까? 지금부터라도 남북한 똘똘 뭉쳐서 한반도 실리주의를 챙기며 대외적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평화체제로 가면서 경제적 협력으로 함께 가야하는 세계평화주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약소국가인 한반도, 앞으로 어떻게 강대국 사이에서 잘 살아내야 할지 조금은 고민이 된다.

 

시진핑 자신의 정치철학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권유지에 필요한 마오쩌둥을 버리지 않고, 시진핑 개인의 국가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도구로 마오쩌둥을 사용할 것이다.

 

위구르인, 티베트인, 몽골인등 비한족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두고 왜 그토록 불행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 중국은 이들과 갈등으로 유혈사태가 종종 일어나지만, 절대 독립을 시켜주지 않을 것이다. 한족들은 독립에 대한 꿈은 파국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으며 국가의 완전성을 해치기 때문에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그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다.

비한족들이 중국에 복속되어서 큰 우산 속에 있는 것처럼 중국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사회에서 불공정한 노동 착취가 사라졌고, 빈곤이 퇴치됐으며, 질병이 없어지고 수명이 연장되고, 교육이 확대됐고, 교통을 비롯한 주요 기반시설이 확충됐고, 전반적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생각한다. 엄청난 행운이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마치 일본이 일제강점기 36년을 침탈한 것을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해주고 근대화시켜주었다는 식의 논리라 소름이 쫙 끼쳤다.

사실 중국의 한족은 비한족의 덕을 톡톡히 봐왔던 것을 망각했다. 중국의 사회경제적 계층화는 경제적 변화에서 비롯한 혜택은 대부분 한족이 누리고 있기에 비한족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 한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1순위에 두는 반면, 비한족은 티베트인, 위구르인, 몽골인이라는 정체성을 1순위로 둔다. 이에 중국은 비한족 집단에 그 어떠한 약속도 해주지 못한다.

 

중국에서는 여론을 통제하면서 필요에 따라서 또한 여론 조장을 하기도 한단다.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들은 민주주의를 취해야할 때면 으레 여론에 따른 감시 개념을 들먹였다.

 

시진핑이 마오쩌둥과 장쩌민의 길을 따라 기존의 정권 승계를 뒤엎을까? 아니면 깨끗하게 물러날까? 궁금했는데 시진핑은 장기집권체제의 길을 택했다. 중국 공산당을 업고 그는 1인 독재체제 장기집권 체제를 택했다. 만장일치로 그가 장기 집권할 수 있도록 개헌안을 통과했을까? 찬성 2958, 반대 2표로 통과한 개헌안,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기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했다. 헌법 서문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의 지도를 지켜나가는 것라는 문구에 과학발전관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삽입됐다. 결국 그는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뜯어고쳤다. 그리고 자연스레 연임이 되었다.

 

뉴스에서 시진핑이 재벌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역시 공산당이구나, 자본주의 맛을 본 그지만, 여전히 개인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중국 인민을 중국공산당 감시하에 경제를 두는구나란 생각에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남한과 대치되어 있는 김정은이가 중국을 모델로 문호를 개방해 자국의 경제발전을 꾀하려 하는 것 아니냐? 와조 체제는 보장받으면서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자국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국은 무분별의 개발을 추구하다보니, 그동안 환경에 대한 의식은 다소 뒤쳐져 있다. 중국정부는 국제 사회로부터 공산당 정권 및 통치권자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 받겠다는 속셈으로 국제 환경 협약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중앙이 아닌 자치구나 지방 정부에 문제가 있다. 현지 기업인과 결탁한 지방 관료들이 중앙 정부의 규제를 무시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환경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점점 나빠지는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 될 것이기에 환경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1자녀 규제를 폐지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국제 사회의 원칙과 규범에 보조를 맞춤으로써 자국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출산을 원하는 인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당국이 출산율 감소를 위해 강압적인 정책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2040년에 일본은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고, 중국도 25%를 넘어서는 국가가 된단다. 현재는 생산 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2040년에는 생산 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된단다. 이것은 사회복지 체계의 위기이다.

 

중국도 역시 고령화에 따른 노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맞벌이 부부에게 몸이 불편한 노부모를 돌봐야하는 문제는 고민이다. 간병인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격이 있고 유능한 간병인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 주거 복지 시설이나 요양시설이 충분치 낳고 서비스 수준도 미흡하다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치매 노인 관리가 시설부족에는 더욱더 중요한 문제이다. 중국은 이제 겨우 치매 환자 요양시설을 짓기 시작했기에 맞벌이 부부에게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대한민국도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유교문화에 근간을 두었던 중국이지만 세계화되면서 또한 개인화가 되어가는 중국의 새로운 자아상에는 전통성과 현대성이 모두 반영돼 있는데 이 두 모순된 가치를 공존하는 가치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하단다. 이렇게 새로운 자아상을 가진 이들은 욕구와 의무, 선택과 책임, 과거 지향성과 미래 지향성, 권위를 바탕으로 한 위계적 관계와 사랑과 우정을 바탕으로 한 수평적 관계 등 상호 대립적 요소를 다룰 때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특징이 있단다. 또 각기 다른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관계를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가치를 쪼개고 분열시키기보다 켜켜이 층을 쌓는 자체는 실용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변화하는 개인의 변화가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와 경제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단다.

 

1954년에 국가적 차원의 종교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공인 종교 조직을 통해 당국의 명령과 지시를 종교인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종교국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중국은 세계종교를 인정했다. 반면 지역 저변에 깔려있던 토속신앙들이 한때 미신타파라는 묘산홍학운동을 벌였왔는데, 최근에 중국은 토속 신앙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신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핍박받던 토속 종교가 이제는 중국의 무형 문화, 전통 문화, 향토 문화 범주에 속하게 됐다. 오늘날 중국은 5대 종교 문화가 중국 사회에 만개하였다. 불교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고, 도교 인구도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고, 이슬람, 개신교, 가톨릭교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종교하니까 중국 여행을 하면서 특이한 풍경을 발견했다. 얕으막한 산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산 아래 뿐만 아니라 산꼭대기까지 집들이 줄줄이 있어서 놀랐다. 나중에 그것들이 묘소인 것을 알았다. 샤머니즘이 섞인 풍속인 듯했다. 중국은 현재 토속 신앙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중국은 서구 사회보다 덜 법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혹은 서구와 다른 제도를 통해 오히려 자국민의 행복을 증진시켰을 것이다. 서구의 법 중심 체제가 훨신 더 우수하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왜냐하면 미국 같은 법 중심국에서조차 계층, 인종, 성별, 장애인 등과 관련한 평등과 형평성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1970년대 이후, 중국은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100배 가까이 늘어났단다. 275000명 이상이 법조계 종사 하고 있다. 법과대학이 10여개 불과했는데 현재는 630곳이 넘을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법치국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란다. 다만, 201410월 중국공산당 184중 전회에서 법치에 관한 결정문을 들여다보면, 시진핑의 사상을 계승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단다. 입법, 행정, 사법을 비롯한 국가 통치 개념과 운영 방식, 법조계와 법조인 교육, 기타 법제도의 모든 측면에 하나의 조직체로서 당과 당의 공식적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법이 당을 위한 통치 도구가 돼야한다고 법체계 확립의 목적에 관한 당문헌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왜 미국 유학을 선호할까? 자국 대학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강압적이고 불안정한 정치 환경에서는 그러한 생각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부모들이 미국 대학에 보내는 신뢰만큼 중국 대학에게 주지 않을 것 같다. 학생들은 시진핑 집권 후 정치적 통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매주 몇 시간을 공허한 정치 구호를 듣는 일에 허비해야 한다. 이러한 강압적 교육 환경에서 중국의 대학은 결국 ‘’냉소주의자기회주의자라는 두 종류의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는 셈이다.

1세기에 걸쳐 전통을 부정하던 중국이 과거를 되짚어 논쟁을 벌이고 있고, 과거 역사를 재해석해 현재에 새로이 적용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나 어느 정도 분석하고 예측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지난 역사의 관점에서 현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국이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종교처럼 역사도 타파해야할 역사에서 다시 중국 역사가 중요히 여기기 시작한 중국 정부, 그들은 이제 공자와 역사를 등에 업고 세계를 모든 분야에서 우뚝 서는 꿈을 꾼다. 그런 의미에서 실크로드, 고전소설, ... 모든 분야에 걸쳐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을 위해 과거의 유물을 활용해줄 지식인들의 역할, 작가들의 역활들을 시진핑은 기대한다. 시진핑은 대중매체를 통해 시진핑 개인에 대한 우상화와 사상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에는 변이통이라는 말이 있다. 변하면 통한다는 말이다. 변화를 이룰 때 비로소 막힘없이 이루어지고 계승되고 이어진다는 뜻이다. 중국의 젊은 학자들은 전통적인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니라 과거는 경외의 대상이 되는 화석이 아니라 ᅟᅵᆫ지한 사유를 위한 토대로서 현재에 다시 시작되는 그 무엇이다. 중국 젊은 학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관점이다. 과거에 진부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는 계속 변화하고 변화 속에 우리가 속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란 나라가 거대한 땅덩어리와 함께 141천 인구가 날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은

성난 호랑이처럼 우리들을 덮칠 것만 같은 두려움은 뭘까? 우리는 늘 중국을 지켜보며, 연구해야할 대상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말이다. 세계에는 언제나 끊임없이 경계해야할 적이자 동지인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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