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초의 감정이 하필 공포와 혐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때가 있다. 당시 파도와 상상된 파도의 차이를 생각하면 내게 공포와 혐오란 상상된 것에 가깝다. 파도라는 생물을 상상하며 바다를 응시하던 나는 내 말랑한 몸을 보호해줄 껍데기랄 것도 없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도 기술도 갖추지 못한 어린이였으므로 그때 내게는 공포와 혐오가 가장 유용하고도 쉬웠을 것이다. 파도라는 낯선 것이 내게 다가올까봐 무섭고 그것이 내게 달라붙을까봐 싫고, 공포와 혐오는 애쓰는 상태가 아니다. 그중에 혐오는 특히 그래서,
그건 지금 내게도 쉽다. 그런 감정이 내게 문득 쉬울 때, 뭔가가 누군가가 즉시 싫고 밉고 무서울 때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로 상상된 것인지, 혐오는 아닌지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작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나의 부모는 네가 이 개똥밭 출신이라는 걸 잊지말라고 내게 경고한 적이 있다. 나는 출신이라는 걸 생각한적이 없고 어디든 개똥밭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들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니, 자기 삶을 그런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니, 놀랍고 상심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예전만큼 나를 흔들지 못한다. 괜찮지는 않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진폭이랄지 파형이랄지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이들의 나쁜 말과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를 향해 당신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자기가 살고자 하는 이를 거절하고, 떨어지라고, 어떤 형태로든 그를 돌볼 수는 있겠지만 그의 비참을 자기삶으로 떠안지 말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가물치를 물에 돌려두었다고 썼다. 해당화를 심고 작약을 두고 보았다고 썼다. 그것이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너무 이른 이야기는 아닐까. 누군가를 너무 상처입히는 이야기는 아닐까 망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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