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김정희,
나는 그가 추사체라는 역사에 길이 남는 명필이었다는 것, 천재였다는 것.
내가 자주 여행을 가던 제주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그를 생각하는 전부였다.
이 책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하신 유홍준 선생님의 책이라는 점에
더 신뢰가 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김정희. 그는 이전의 내 이미지 속에 천재의 이미지로 자리해서 인간적인 면모는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를 바라보며, 이전에 그를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을 후회했다.
인생의 힘듦은 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였던 김정희는, 자신의 형제와 자신의 아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아버지의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그 당시에는 만연하던 풍습에 따라서
큰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을 수 있겠지만, 어린 시절 내가 다른 사람의 집에 가게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다른 사람을 아버지라 불러야 한다는 건 역사적 기록에서나 쉽지
사실상 인정하기 싫고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김정희는 그렇게 가족과 이별아닌 이별을 했어야했고,
이십대 초반, 아내가 사망하는 일을 겪고 말았다.
그렇게 두번째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지내며 하고 싶은 공부도 많이하고 중국에 가는 일도 많았다.
그 시간동안 그는 좋은 스승들을 많이 많나며, 또 비좁은 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넓은 대륙으로 나가 세상이 돌아가는 형국을 많이 보며 견문과 생각을 넓혀갔다.
그러던 시간도 잠시, 자신의 친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자신 또한 제주로 북쪽으로 귀양과 유배를 당하며 일생을 보냈다.
천재라고 좋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왔다고, 그래서 생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공부를 꾸준하게 했기때문에 그만의 글씨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또한 나와 일반인들처럼 어려운 고뇌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가 꾸준하게 죽음 직전까지 공부를 한 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그의 굴곡있는 인생을 따라서 그의 글자로 변화하고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한 부분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생 전반적인 부분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이러한 점을 살펴보았을 때에, 나에게도-
내가 3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오면서 아직 이룬게 없다고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고
지치고 무력하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에,
(추사는 물론 어린시절 많은 것을 이룩했지만) 그는 죽음의 앞까지 노력했다는 사실을
인생은 지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정직하고 끈기있게 노력하며 살아갈때에
전반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