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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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나는 그가 추사체라는 역사에 길이 남는 명필이었다는 것, 천재였다는 것.
내가 자주 여행을 가던 제주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그를 생각하는 전부였다.

이 책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하신 유홍준 선생님의 책이라는 점에
더 신뢰가 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김정희. 그는 이전의 내 이미지 속에 천재의 이미지로 자리해서 인간적인 면모는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를 바라보며, 이전에 그를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을 후회했다.
인생의 힘듦은 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였던 김정희는, 자신의 형제와 자신의 아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아버지의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그 당시에는 만연하던 풍습에 따라서
큰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을 수 있겠지만, 어린 시절 내가 다른 사람의 집에 가게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다른 사람을 아버지라 불러야 한다는 건 역사적 기록에서나 쉽지
사실상 인정하기 싫고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김정희는 그렇게 가족과 이별아닌 이별을 했어야했고,
이십대 초반, 아내가 사망하는 일을 겪고 말았다.

그렇게 두번째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지내며 하고 싶은 공부도 많이하고 중국에 가는 일도 많았다.
그 시간동안 그는 좋은 스승들을 많이 많나며, 또 비좁은 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넓은 대륙으로 나가 세상이 돌아가는 형국을 많이 보며 견문과 생각을 넓혀갔다.
그러던 시간도 잠시, 자신의 친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자신 또한 제주로 북쪽으로 귀양과 유배를 당하며 일생을 보냈다.

천재라고 좋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왔다고, 그래서 생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공부를 꾸준하게 했기때문에 그만의 글씨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또한 나와 일반인들처럼 어려운 고뇌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가 꾸준하게 죽음 직전까지 공부를 한 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그의 굴곡있는 인생을 따라서 그의 글자로 변화하고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한 부분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생 전반적인 부분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이러한 점을 살펴보았을 때에, 나에게도- 
내가 3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오면서 아직 이룬게 없다고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고
지치고 무력하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에,
(추사는 물론 어린시절 많은 것을 이룩했지만) 그는 죽음의 앞까지 노력했다는 사실을
인생은 지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정직하고 끈기있게 노력하며 살아갈때에
전반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추사 김정희 399p

하늘이 총명을 주는 것은 귀천이나 상하나 남북에 한정되어 있지 아니하니
오직 확충하여 모질게 정체를 쏟아나가면 구천구백구십구분은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나머지 일 분이 인력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니 끝까지 노력해야만 하는 거라네.

오늘날 우리는 2퍼센트 부족을 말하지만, 추사는 0.01퍼센터의 부족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추사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주의할 것은 마음이 거칠어도 안 되며 또 빨리 하려 해도 안되며, 
맨손으로 용을 잡으려는 식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나는 추사가 이렇게 말한 것이 무척 반갑고 고마웠다. 
특출할 없는 모든 인생에 주는 희망의 메시지이자 각성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9년동안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부인이 사망했고-
(그 마저도 한달뒤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본가에 부탁했지만
식료품들과 책들의 배송이 한달정도나 걸리는 긴 시간을 보내면서 
음식물들은 부패되어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그렇게 김정희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9년이라는 시간동안 집안도 많이 어려워져
잘나가던 집안이 빈곤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실 양반집안이라고 하면 무슨일이 있어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그 당시에도 신분만 양반이고, 중인들과 혹은 그들보다 더 어렵게 사는 무늬뿐인 양반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지금 내가 일을 하지 않고 9년동안 생활비만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또다른 흥미거리가 있다.
사실 추사가 어느 시대 인물인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인데-
정순헌철고..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 가운데에서
정조 시절 태어나 순조 헌종 철종 고종으로 이어지는 그의 일대기는
사실 우리와 그리 멀지 않다. 
나보다 200여년 정도를 먼저 살아온 그에게 나는 왜이리 무심했을까.

그의 일생가운데 국사 책에서 배웠던 많은 인물들을 만나는 점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다산 정약용도 스리슬쩍 나오고, 조선시대 왕들은 그렇다 치지만,
중반부터 나오던 이하응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참 낯이익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이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었던 것이다. 
추사는 흥선대원군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알려준 하늘과 같은 스승이었다.

또한 그의 사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고 있는 점은
나이가 들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인생이 아닐, 그 시절에도 삶의 긴장을 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추사 김정희 485

만년에 벗들과 여유롭게 노닐고 즐기면서 살았다고 해서 그가 삶의 긴장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학문과 예술에 대한 추사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추사의 만년을 건강하게 지켜준 것은 공부하는 행복, 제자를 가르치는 줄거움, 예술에 전념하는 열정이었다.
그중 공부하는 행복이 제일 컸다고 한다. 

이렇듯 나도 끝까지 삶의 긴장을 쥐고 기쁨을 느끼며 살아야겠다고-
추사만큼이나 좌절가운데 무너지지 않고, 삶의 이유를 찾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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