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 먹고 마시는데 부지런하셨다. 종교지도자들이 너네는 금식도 안 하고 먹기만 하냐는 비웃음에 대해 깔끔하게 응수하셨다."신랑이 함께 있는데 어떻게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슬퍼할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9장 15절(상)"예수님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불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죄인들을 초청하는 부르심이었다. 그것을 보며 율법이나 제사를 올리는 행위를 종교라고 믿는 누군가에게는 부대꼈을 것이다."내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한마디, 예수가 할 것 같은 한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것은 처진 내 어깨를 도닥거리는 따스한 힘이자 잘잘못으로 평가받는 지친 일상을 뛰어넘는 위로가 될 것 같다. 결국 구원이란 이런 위로가 아닐까" 성경의 여러 장면에서 예수님의 식탁으로 초대받는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참 괜찮았다. 가끔 따꼼하게 찔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식탁에 대한 기록을 남겨본다.*끼리의 변주*"예수의 식탁에 모인 사람들은 조건 없이 밥 친구가 되며, 그들이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예수의 식탁에서 신기하고 새로운 '끼리'가 탄생한다. 예기치 않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예수님을 중심에 둔 '끼리'. 레위와 삭개오의 식탁이 등장한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에 내야 하는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둬들여 배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이 둘도 관행처럼 돈을 벌던 사람들이었을 테고.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집에 머무르시며 함께 빵을 떼시며 예수님의 식구로 불러들이셨다. 그 과정에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위해 죄인의 자리에서 부당하게 모은 재산들을 다 돌려주겠다는 결심을 통해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자리로 옮겨갔다.크리스천끼리의 모임보다는 새로운 이들을 초청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되어준다. 구원은 예수님의 자녀들 사이에서보다는 밖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끼리'를 만드는 데 열심을 내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