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의 겨울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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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과 만나는 듯한 책읽기를 할 때가 있다. 그 특별하고 귀한 경험은 아주 드물게 선물처럼 주어진다. 소리 없이 내리는 안개비처럼 하얗고 담담하게 시작된 소설은 어느새 시작보다 더 담담하게 끝난다.

― 김숨(소설가)


어두운 회색 빛의 펜션이 떠오른다. 펜션의 벽 사이로 겨울비의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바닥의 흙은 촉촉하게 젖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봄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봄은 보이지 않는다. 해는 구름 뒤에 가려져 몇 시간 전의 빛을 보내려 발악하지만 이 곳에서 해는 무의미하다. 표정이 없는 사람들, 회색빛의 하늘, 속초의 겨울. 발자국은 타오르는 감정을 잠식시키고 두 눈을 부릅 뜬 복어는 사정없이 칼끝에 분해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려갔던 이미지다. 색은 주로 푸른빛이 약하게 도는 회색. 컬러코드는 #95adc5

청회색의 하늘, 회색빛 펜션, 회색빛 표정. 그 아래 진득한 고동빛의 이끼가 낀 진흙.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신발 바닥에 묻어있는 허망. 덧없고 허망하다. 타오르는 모든 것을 잠식시키는 그곳.






우연히 만난 소설이다. 회색빛의 누군가가 담담하게 제목만 적어놓은 글을 보고 당장 도서관에 달려가 손에 넣었던 소설이다. 소설은 더할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무신경하고 개인주의적인 소설 속 사람들과 봄이 오지 않는 속초, 문체부터 상황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역량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거칠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덤덤하고 또 덤덤했다. 지극히 사실적이고 꾸며지지 않은 이야기랄까. 소리 없이 내리는 안개비처럼 하얗고 담담하게 시작된 소설은 어느새 시작보다 더 담담하게 끝난다. 소설가 김숨의 서평이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전부였다. 써내려가던 글을 멈출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서평이라 이 글의 시작에 인용하기도 했는데, 여하튼 소설의 시작부터 서평까지 모든 게 감각적인 책이다.



누군가는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감각적이다. 전율이 이는 소설이 아니다. 직접 읽고 느끼길 바란다. 당신의 색을 온몸으로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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