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서는 기쁨 - 우리 인생의 작디작은 희망 발견기
권영상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에 집근처 뒷산을 올랐다. 때 마침 펑펑 눈이 내렸다.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니 너무 기분이 좋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 속에 들어서서 한껏 눈을 맞으면서 휘적휘적 산길을 오른다. 눈 내리는 산은 적막하다. 마른 낙엽에 사각사각 떨어지는 겨울눈 소리가 오히려 산을 고적하게 만든다.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과 떡갈나무 숲 사이로 사선을 그으며 날아드는 눈발이 그렇다. 눈으로 온 산이 하얗게 덮여간다.

올해 소천문학상 수상자인 아동문학가 권영상(57)씨는 강릉의 초당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많은 이에게 힘이 될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뒤에 서는 기쁨’을 펴냈다. 그는 30여 권의 동화와 동시집을 출간해 왔고 <그 애 앞에 설 때면>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 <들풀> 등의 작품이 초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 세종아동문학상, 새싹문학상, MBC창작동화대상 등 아동문학계에서 큰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집안을 이끌면서, 어릴 적 꿈을 쫒아 동화, 동시 작가로도 이름을 널리 알린 저자에게도 중년이 찾아들었다. 얼굴에도 글에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목마름은 그에게 인생을 돌이켜 보게 했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저자의 자문으로 시작된다. 그는 쉰을 훌쩍 넘긴 사내다. 자식이 있고 가정이 있다. 일 년씩을 살면서 나 자신을 위해 덥석 이만한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다. 마음으론 여유를 누리며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시간을 만들어 내 앞에 놓아준대도 성큼 그 시간을 즐길 줄 모른다. 그렇다고 가족으로부터 대단하게 대접받는 가장도 아니다. 항상 일 중심이었기에 식구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방법도 모르게 돼 버렸고, 가끔 얘기를 나누면 “아빠가 어렸을 때는……”을 녹음기처럼 반복하며 훈계조 말만 할 뿐이다. 어쩌다 먹고사는 일에 노예가 된 비굴한 직장인이지만, 더 이상 비굴하지 않기 위해 문학을 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이 책의 <다시 태어난다면>편을 보면 현직 교사이기도 한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찾아간 16년전 부임지에서 이제는 농부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가 된 어느 제자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어릴 적 책을 잘 읽는다며 “아나운서 감.”이라고 칭찬했던 스승의 말을 잊은 적이 없다며 제자는 “다음번에는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말한다. “다음이라니 언제”라고 놀라며 묻는 스승에게 그녀는 “다시 태어나면요”라고 당돌하게 대답한다.

저자는 어릴적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계시는 동안 좌절과 방황의 세월을 보내면서 술과 싸움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무학의 촌로였던 아버지의 한마디에 일어섰던 경험을 떠올린다. 삶에 희망이 없다며 주저앉아 우는 저자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다 죽는대도 이 아비에겐 보리씨 한 톨만 한 희망이 그래도 있다. 너도 끈을 놓지 마라.” 아버지가 들려주신 ‘보리씨 한 톨만 한 희망’의 말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는 때로 조금 앞서 인생을 산 선배의 입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젊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아버지들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더불어 흔들리는 자신을 바로잡고 싶어 하는 모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기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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