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유토피아
김영종 지음, 김용철 그림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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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의 국가 균형 발전이라든가 지역 발전 5개년 계획, 도시 재개발 사업 그리고 신도시 건설 등은 모두 플라톤의 '불변의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은 유토피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토피아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관철되고 있고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평화는 열강들의 유토피아 정책의 일환이다. 약소국가들은 제국주의 사이의 힘의 균형 속에서 불안하게 평화를 맛보고 있다. 한편으로, 세계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힘도 유토피아다. “그 힘은 미래의 천국을 빌미로 현재를 박탈하기 위해 현재에 구체적으로 작용한다.” 시민들은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저 높은 곳, 유토피아를 향해서 돌진한다. 유토피아의 달콤한 형이상학으로 치장된 돈의 위력 속에서 노예처럼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이 같은 유토피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토피아에 박탈당한 현재를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토피아는 미래의 천국을 빌미로 현재를 박탈하기 위해 현재에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이 책의 서문은 <파브르곤충기>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간디스토마 기생충이 양의 먹이가 되기 위해 개미의 뇌 속으로 들어가 개미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통제권을 잃은 개미는 매일 양이 잘 먹도록 풀 꼭대기 위로 올라가 단단히 매달린다. 아무 곳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꼭 양이 좋아하는 냉이와 개자리 풀을 찾아간다. 그는 현대인의 삶을 간디스토마 유충에게 뇌를 지배당하는 개미에 비유한다. 우리 뇌에 들어와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현대문명 유충’이다. 그의 정체를 파헤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했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자본주의적 일상을 비판하는 예술 비평을 모았으며, 2부는 사회 비평적 태도로 한국 사회를 강하게 비판한다. 1부에서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두 축제를 서로 비교하면서, 근대의 제도적 평가가 신성을 어떻게 훼손하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논평하고 있다. 그는 애니미즘 미학이 갖고 있는 원시성을 옹호하며, 근대 제도 예술에 대한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2부는 동시대의 사건들을 논평하면서, 자본주의 바깥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탐색하는 사회 비평을 하고 있다. 그는 용산 참사와 근대적 합리성의 공모 관계를 밝히고, 진보가 근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유토피아의 환상에 대해 공격적으로 분석하고, 무엇보다 한국의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권 엘리트들에게 분명한 불신 의사를 전달한다.

끝으로 저자는 세계 인류가 맞게 될 “유토피아”의 모습을 세 가지로 진단한다. 첫째로, 지구촌의 운명은, 전 세계가 인디언 보호 구역화 하는데,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현실이 지구촌 전체에 걸쳐 실현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의 운명은, 지구촌의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온 감시체제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개인의 운명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는 불철주야로 개발해온 그들만의 유토피아에 곧 착륙하게 될 것인데 인류에게는 단 한 번의 선택이 남아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종말’이라는 유토피아가 도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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