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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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설문조사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통일이 되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꼽혔다고 한다. 방학을 이용해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건너 나라에까지 어학연수를 떠나는 아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지금, 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디즈니랜드나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백두산과 개마고원이라는 결과가 순전히 그곳이 우리 민족의 혼이 서린 영산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아직 백두산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민족의 시원'이라거나 고고한 '백두대간의 정수리'라는 화려한 수사보다 '비행기는 높아, 높은 건 백두산'이라는 말이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백두산 등척기』는 백두산의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뿐 아니라 저자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통찰을 바탕으로 백두산 정계비에 얽힌 국경문제, 간도를 둘러싼 분쟁의 역사적 이력, 변경 곳곳에 서린 각종 전설과 풍문, 동식물의 생태 등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체 안에 균형감 있게 담아내 기행문으로서의 감동뿐 아니라 사료적인 가치도 큰 작품이다. 특히 백두산 정계비는 이듬해(1931년) 만주사변으로 소실됨으로써 저자가 남긴 당시의 위치 실측과 비석의 모습 등이 마지막 현장 고증 자료가 되었다.

이 책은 1931년 간행된 [백두산 등척기]를 풀어쓴 것이다. 당시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난해한 한문투의 글은 한글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풀어 읽은 정민 교수는 “근대 시기의 글이 오늘의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번역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한자어를 풀이하거나 주석을 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문장의 결까지 바꿔 그 알맹이를 알차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백두산 등척기』를 풀어 읽기 위해 내용은 빼거나 보태지 않고, 한자말은 풀어쓰고, 긴 글은 짧게 끊고, 구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꾸고, 한 문장도 남김없이 다 바꾸고 하나도 빠뜨림 없이 그대로 실어 80년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민세는 백두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말하기를 ‘상상봉과 천지, 무틀봉 위로 펼쳐진 넓은 전망, 삼지연의 맑고 고운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 등 세 곳이 중심이라’고 했다. 특히 정취가 넘치는 삼지연의 상상세계를 밟아보지 않고는 조선 역사에서 그 많은 희곡적인 장면에 참 묘미를 맛볼 수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세는 백두산을 가기 위해 1930년 7월 23일 밤 11시에 기차를 타고 경성역을 출발해 16일 동안 많은 일행과 함께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 압록강을 따라 내려왔다. 지금은 소실되고 없는 백두산 정계비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한 것이나 조선 상고사나 전래 전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에서는 대학자의 높은 식견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백두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으로 민족의 정신적 동력이었던 백두산이 그 이름을 지키는 일마저 위태로워진 지금, 민족 지성으로 불려온 민세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를 통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백두산의 의미를 되새기고 무뎌진 우리의 역사의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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